다정해지기까지 알아야 할것들
“상처가 많은 사람이 다정한 건, 그 다정이 피와 눈물로 우러났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사랑받기 위해 울었다. 어른이 되니 사랑하지 않기 위해 애써 참는다. 눈물보다 고요함이 더 큰 증거가 되는 날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을 사귀면 그런 소리에 뒤돌아 마음이 아리곤 했다. "상처가 많아 보여요." 그러나 이젠 안다. 상처는 균열 사이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이란 사실을. 그래서 내 상처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나의 상처는 그렇게 나에게 빛이 되어주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았다. 그래서 상처가 많은 사람을 유독 빠르게 잘 알아차리는지도 모른다. 삶의 균열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빛, 그것은 빛나서 숨길 수도 없는데 말이다.
예전에 한 페미니스트 모임에 칼럼을 몇 회 써 준 적이 있었다. 그날은 각자 개인의 상처를 고백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내 상처를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상처에 대한 코멘트는 의외로 예외였다. "상처가 너무 많아 보여요." 그때 처음, 상처라는 말에 대해 이렇게 차가운 감정이 드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날이었다. 내 상처가 차갑고 딱딱하고 무겁고 음습하게 보여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상처들을 드러내는 시간이었음에도 나는 내 상처들을 조율해서 드러내야 했다는 사실, 너무 정직한 언어들은 또다시 상처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돌아온 그 상처를 껴안고 손끝을 뻗어 만지게 되었던 그 순간, 나는 그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탈퇴를 결심했다.
어떨 때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매우 솔직해지는 날이 있다. 실패의 과거와 상처받았던 그 기억마저 꼭꼭 숨기고 싶었던 날이 무장 해제되듯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날 말이다. 그런 날에는 오히려 다정을 숨기고 정직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아마도 글을 쓰게 된 듯하다. 상처가 도달하지 못한 민낯을 글이라는 매개를 활용해 드러내고 나와 어루만진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상대의 정제된 상처를 말하는 방식 뒤에 더 큰 상처들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말하지 않아도 그 상처에 닿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독 다른 이의 상처가 잘 보인다. 상대가 웃더라도 쓸쓸했던 뒤편의 그늘이 보이고, 얼마나 고독했을까 연민이 일렁거린다. 상대는 분명 웃었는데, 나는 달의 뒷편을 보듯 그 웃음의 뒤가 보여서 돌아와서는 웃지 못한다. 그가 외면했을 상처들의 뒤안이 보여서, 혹은 내 슬픔과 상처가 투사돼서 나는 매워 밤에 문득 우는 날이 많아졌다. 상처와 마주하지 못했던 그의 연약함이 두려워서 피하기만 하는 그 순진함이 오히려 내 가슴이 시리게 아프다.
살며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유독 사람들이 내 앞에서는 상처를 잘 드러낸다. 아마도 내가 많은 상처를 겪어왔기 때문에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말 못하며 흐느끼던 시간들, 흔들리던 눈빛들, 아무도 있지 않은 것 같은 외로움들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나에게 유독 더 발달된 감각이랄까. 고요한 사람들은 오히려 고요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치열했고 지독했고 서러웠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몇 번이나 싸우고 피 흘리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고 반복해야 간신히 얻어지는 전리품이었다. 상처로 얼룩진 밤들을, 울지 않고 배기지 못하는 밤들을 건너온 영혼들은 고요하다. 그 고요함은 침묵과 닮아 있다.
그래서 한 번의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쓰러진 밤이 있었고, 살려고 발버둥 친 치열한 한숨들이 따라 붙는지, 이 나이가 되니 알 것만 같다. 그리고 상대에게 베푼 어느 날의 그 다정한 눈빛과 친절이란 것은 얼마나 많이 당했던 무시와 무례, 그리고 사랑받지 못했던 날들의 종유석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알게 되니 오히려 내 다정은 더욱더 무거워지고, 내 친절은 더 절제하게 된다. 다정함이란 결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다정함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정은 물과 같아서 한없이 흐르고 모이고 또 담기는 방식에 따라 다름으로 표현되지만, 어디에서 고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정은 결코 증발되지 않고 우리 마음에, 우리의 그 상처에 고이는 방식이다. 상처에 다정이라는 기억이 머물면 치유가 일어나고 그 상처는 회복되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다정해지려 한다. 누군가의 말없는 울음 끝에, 혹은 오래도록 감춰둔 상처의 가장자리에, 물이 고이듯, 기억되기를 바란다. 상처는 언젠가 회복되고, 다정은 언젠가 그 자리에 고인다. 우리는 모두, 고요한 증명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