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시끄러웠고 내 안의 말들이 그만 좀 멈췄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바다는 유난히 맑고 투명해서 마치 하늘의 속살을 그대로 품은 듯했다.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그것은 빛의 반사이기보단 마음의 반향처럼 느껴졌다. 바다는 그날 하늘을 닮고 있었고 그 닮음은 단순한 색의 모방이 아니라 하늘이 품은 감정과 기류와 온도를 받아 안는 바다만의 깊은 응답이었다.
다음날 다시 찾은 바다는 전혀 달랐다. 깊은 진파랑이 수면을 덮고 있었고 바람은 차갑고 구름은 무겁게 드리웠다. 하늘이 한껏 웅크리고 있는 날 바다는 마치 그 울음을 대신 터뜨리려는 듯 부서지는 파도를 내던졌다. 바다는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하늘의 기척에 조용히 되받아 안아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반향은 격렬하고도 슬픈 노래처럼 들려왔다.
노을이 질 무렵 나는 나뭇잎 하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핏빛으로 물든 그 잎은 가을을 향해 스스로를 비우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빛이 이파리 위에 내려앉을 때 그것은 마치 하늘의 마지막 고백처럼 보였다. 꽃잎 하나에도 노을은 깃들었고 가지 끝에서도 빛은 반짝였다. 그것은 자연이 자연에게 건네는 반향이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말이 때론 늦은 계절처럼 내 마음에 되돌아오고 어떤 눈빛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반향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감정은 침묵 속에 던져졌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어떤 인연은 잔잔한 호수처럼 내 안에 퍼지고 또 어떤 인연은 폭풍처럼 흔들어놓는다. 그 모든 감정은 지나간 뒤에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남겨진 것들이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울린다. 그것은 후회이기도 하고 감사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의 한 조각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의 반향은 내 안의 동굴을 하나씩 밝혀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나 멀어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되돌아오는 말들 되살아나는 감정들 아직도 마음 안에 살아 있는 어떤 존재들이 그렇게 반향이 되어 나를 두드린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되기를. 상처가 아닌 따뜻한 반향으로 남기를. 어느 날 불쑥 마음에 닿아주는 조용한 울림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