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몇 년 전, 서귀포의 내 테라스. 그곳은 나만의 작은 세계였다. 바람은 늘 가볍게 불었고, 한라산은 아무 말 없이 저 멀리 서 있었다. 낮이면 산 능선 위로 구름이 걸려 있었다. 마치 머리를 살짝 내민 채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저녁이면 산 아래로 붉은 노을이 드리웠고, 바람이 그 빛을 데려와 테라스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바람은 산에서부터 내려와 바다로 흘러가고, 나는 그 바람을 따라 내 마음을 흘려보냈다.
그날도 나는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는 갓 씻어 올린 채소 몇 점과 손때 묻은 잔이 놓여 있었다. 빨간 뚜껑의 바비큐 그릴도 준비해 두었지만, 불을 지필 생각은 없었다. 기척이 없는 저녁, 혼자 앉아 바람이 머물다 가는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기다림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을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는 창가의 바람종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그것이 흔들리고, 가끔은 바람조차 지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가 이곳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고, 어느 날은 한라산 저편 어딘가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찻잔 속에서만 시간은 찰랑이고 있었다.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그 시구가 문득 떠올랐다. 기다리는 동안, 기다림이란 것이 오롯이 내 안에서만 익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테라스에 앉아, 붉어진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저 너머 어딘가, 그도 이 순간을 함께 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는 여전히 너무 먼 곳에 서 있을까.
밤이 되자 하현달이 떠올랐다. 저 하늘 어딘가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달빛이 테라스 바닥에 길게 번지면 나는 다시금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늘 같은 자리에서, 늘 같은 모양으로 떠오르는 달처럼, 내 마음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현달이 뜨는 밤이면, 어김없이 당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