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식재(一病息災)

갑상선암완치 20주년

by 이 경화


올해로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지 20년이 되었다. 일병식재(一病息災), 하나의 병을 얻는 덕분에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말처럼, 내 목에 새겨진 4cm의 수술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신이 내게 허락하신 제2의 생명의 표식이다.


수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수술방을 다시 나오지 못한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채,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아직 치러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면 나는 다시 저 문을 열고 나오겠지.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더 이상 삶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그렇게 나름대로 영혼의 이끌림대로 작은 서원을 했다.


그러나 수술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폐 경계 부위에 자리 잡은 암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수술 시간이 길어졌고, 회복 역시 쉽지 않았다. 수술 후의 나는 몸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늘 120%를 쏟아붓던 삶, 열정이 넘쳐 나를 혹사시키던 삶에서 과감히 한 발 물러섰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적절히 안배하는 법을 배웠고, 생사에 대한 집착 역시 내려놓게 되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병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이었다는 것을.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암은 결국 단 하나의 문장으로 내 삶을 정리해주었다.


나는 그 문장을 가슴에 품고, 지금 이곳 제주에서 더 세인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친구와 함께한 20년 동안 나는 멈추고, 다시 생각하고, 삶의 근원을 돌아보았으며, 작은 것에 감동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자란 이 친구는 이제 스무 살이 되었고, 나는 비로소 이 친구에게 "진짜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갑상선 환자들에게 장마철은 가장 힘든 계절이다. 비가 내리면 마치 몸이 지하 3층 아래로 끌어내려지는 듯한 묵직한 피로가 몰려온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 친구를 통해 배웠다.


날이 궂으면 몸은 비록 무겁지만, 영혼은 한없이 가볍다.


#일병식재를 되새기며


#2025. 암 수술 20년 차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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