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사랑하라(Amor fati)

by 이 경화


어느 날 나는 불행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하듯이. 삶을 돌아보면 불행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어린 시절 가족의 부재로 느낀 깊은 외로움과 상실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겪은 아픔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련들.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는 불행의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그 불행을 피해 다녔고 때로는 그를 원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불행은 나를 부수려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들려 했다는 것을.


니체는 말했다. "운명을 사랑하라." 이 말이 처음에는 불편했다. 어떻게 불행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행복만을 원하고 불행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고독과 방황, 그리고 어른이 되어 겪은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그 모든 것이 나를 이루는 본질적인 조각들이었다.


특히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죽음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실감했다. 병원 복도에서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것이 꿈처럼 흘러갔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몸은 무거웠고 상처는 뜨거웠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완전한 삶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숨을 쉬고 있었으며, 다시 걸을 수 있었고,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불행을 피하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거세게 몰려왔다. 도망칠수록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불행이 내게 던진 모든 상처와 슬픔을 직면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만약 우리가 불행을 원망하는 대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만약 우리가 불행을 사랑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게 닥친 모든 불행을 사랑한다. 그것이 나를 더 깊게 만들었고, 더 넓게 만들었으며, 더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그것이 내가 끝까지 싸우고, 끝내 살아남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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