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대하여

by 이 경화


지천명(知天命), 오십을 넘으면 하늘의 이치를 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안다"는 의미를 단순한 깨달음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오십 이전의 삶이 주관적이고 아집적인 견해 속에서 굳어졌다면, 오십 이후의 삶은 보다 넓고 보편적인 지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껏 사회적 역할과 기대 속에서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나’를 벗어던지고, 본래의 천성과 본질에 가까운 ‘참된 나’를 찾아가는 시기, 나는 이 시간을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삶의 힘을 빼지 못하고 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아등바등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이 태어나 바꿀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삼라만상도, 계절의 흐름도, 인연의 만남과 이별도, 그것은 나의 뜻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며, 우주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온전히 깨닫고, 그 깨달음 속에서 힘을 빼며 살아가는 시기, 나는 이 시간을 진정한 지천명이라 부르고 싶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풀잎 위에 매달린 한 방울의 이슬과 다름없다. 바람이 불면 떨어지고, 햇살에 증발하는 그 짧은 순간을 우리는 애써 움켜쥐려 몸부림쳐 왔던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이렇게 짧은 삶 속에서,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을까. 이제 와 깊은 반성이 남는다.


하지만 후회로 점철된 삶이 아니라, 젊은 날의 삶에서 단 하나의 문장, 단 하나의 진리를 건졌다면 그 또한 헛되지 않은 삶이었으리라.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된 발자국이 아니었음을,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음을 믿는다.


힘을 빼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에 대해 굳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살아보니 알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깨달음과 경험으로조차 내 삶 하나조차 온전히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을. 그 한계를 몸소 체험하고, 이제야 비로소 내가 붙잡고 있던 알량한 나를 내려놓는 시간. 나는 그렇게, 오십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제는 무엇을 더 움켜쥐려 하기보다, 서서히 비워가며 가벼워지는 것.


그것이 내가 지천명을 맞이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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