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에 대하여

by 이 경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장을 접는다. 바람이 스치면 종이가 팔랑이며 흔들리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잃지 않으려 한다. 다시 돌아왔을 때 어디까지 읽었는지 알 수 있도록.


갈피라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않으려 접어두는 시간들 다시 돌아오고 싶은 순간들 혹은 쉽게 지나치기 아쉬운 마음 한 조각들. 인생에는 저마다의 갈피가 있다. 어떤 것은 책 속의 마른 꽃잎처럼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고 어떤 것은 손끝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날아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자주 갈피를 만든다. 책 속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지나온 계절 속에서 문득 마음에 닿았던 한 마디 스쳐 지나간 어떤 풍경 그날의 온도와 빛까지도 가만히 접어둔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다시 펼쳐본 갈피 속에서 지난날의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어릴 적 나는 소중한 것들을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에는 꽃잎을 바닷가에서 주운 조그마한 조개껍데기를 좋아하는 이의 손글씨가 담긴 쪽지를. 시간이 지나 펼쳐 보면 꽃잎은 바스라지고 조개껍데기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글씨는 희미해져도 그 순간의 감정만큼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갈피가 있다. 우리는 가끔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그와 나눈 말을 조심스레 마음 한쪽에 접어 둔다. 그때 네가 해줬던 말 기억해. 그 순간 네가 내 손을 잡아줬지. 이런 갈피들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만히 펼쳐지고 그때의 따뜻함이 손끝에 되살아난다.


그렇지만 모든 갈피가 영원할 수는 없다. 어떤 갈피는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고 어떤 갈피는 다시 펼쳐볼 날 없이 사라진다. 그것이 어쩌면 삶의 자연스러움일지도 모른다. 모든 기억이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지나온 갈피를 천천히 들춰보며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도 나는 한 장을 접는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다시 돌아오고 싶은 시간을. 언젠가 이 페이지를 다시 펼칠 때 그때의 내가 남긴 갈피가 나를 반겨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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