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에게 섬이다

by 이 경화


제주 바다 건너 비양도가 보인다. 흐린 하늘 아래 떠 있는 작은 섬.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는 그 섬을 바라본다. 가까워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선명하게 존재하는 그곳. 마치 인연이 그런 것처럼.


돌담을 따라 박혀 있는 작은 소라껍데기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누군가 지나가며 하나둘 꽂아두었을 흔적. 그 사람은 이곳을 떠났을 테지만 그가 남긴 작은 흔적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인연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짧은 순간을 남기고 사라진다. 어떤 인연은 가까워 보이지만 다가갈 수 없고 어떤 인연은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가깝다.


음료를 한 모금 마신다. 차가운 얼음이 잔을 부딪치며 투명한 소리를 낸다. 혀끝에 닿는 상큼한 첫맛이 순간적으로 온 감각을 깨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엔 선명하고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결국에는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뎌진다는 것이 아니라 스며든다는 것이다. 떠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멀어진다고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다.


비양도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가까이 있어야만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걸어야만 마음이 닿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멀리 있어도 서로를 향해 서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젠가 마주할 날을 기대하게 되고 기다리게 된다.


비양도는 여전히 저기 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밀려와도 그 섬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바라본다. 저 섬도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언젠가 닿을 수 있다면 닿고 싶다. 기다린다는 건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니까.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이 살짝 흔들린다.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파도처럼 어떤 인연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바다가 아무리 흔들려도 섬은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린다. 나는 기다린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