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서있는 것들

by 마르치아


#말이가르쳐주는것들


제주에서 말을 처음 마주했던 날, 나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름답다고 느껴야 할 하늘도, 싱그럽게 흔들리는 풀잎도 그날 따라 아무것도 내 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말을 보는 마음조차 어딘가 무뎠다. 말은 그저 거기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없었으며 나를 향해 눈을 돌리지도 않았지만, 나는 자꾸만 그 자리에 발이 붙었다. 고요했다. 그러나 묘하게 불편한 고요였다. 말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나를 마주하러 간 것 같은 기분. 침묵한 채 있는 그 생명 앞에서 내가 말한 모든 말들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와 발밑에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내가 했던 말들, 하지 못한 말들, 하고도 지워버린 말들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한 생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켜야 할까. 그 말은 단단한 등줄기를 가진 채 미동조차 없이 서 있었고, 나보다 오래 숨을 참아본 생명처럼 보였다.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내 말들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내가 견디지 못했던 문장들이 그 생의 조용한 숨결에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말을 비우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주변의 풍경은 그 침묵을 완성하고 있었다. 풀은 누군가의 발길에 눌린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바람은 이미 지나간 후처럼 느껴졌으며, 젖은 이끼가 숨을 삼키듯 눕고 있었다. 바위 틈에서 솟은 작은 버섯은 흙 속에서 오래 묵은 문장을 하나 삐죽이 내밀고 있는 것 같았고, 아무도 읽지 않은 일기처럼 서툰 곡선을 지닌 채 제 몸 하나 간신히 밀어올리고 있었다. 이슬은 잎 끝에서 오랫동안 떨리다 떨어졌고, 그 사라지는 소리 없는 추락이 내 안의 오래된 후회들과 겹쳐졌다. 나는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의 안에 들어가 내 삶의 어딘가를 더듬고 있었다.


나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말은 너무 쉽게 얼굴을 바꾸고, 너무 많은 의미를 가장하고, 너무 오랫동안 진심을 가린다. 그래서 나는 어떤 중요한 순간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버릴까 봐, 한 번 내뱉은 말이 나를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갈까 봐. 나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 말이 많았고, 잘 다듬었고, 사람들을 움직였고, 나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때로 내 안의 말과 무관했고, 그 무관함이 삶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 때, 나는 다시 침묵으로 돌아왔다.


말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내 전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존재가 어떤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까지 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내가 지니고 있었던 말이라는 무기와 방패를 조용히 내려놓게 되었다.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더듬는 일이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말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느냐는 침묵의 연습이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가장 많이 오해하는 순간은, 사실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을 때가 아닐까 하고. 말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의미는 언제나 불완전하게 전달되며, 그 불완전함이 쌓이고 부유하다가 결국 오해로 굳어지는 걸 수없이 보았다. ‘말’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그를 나의 틀에 끼워넣으려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말은 설명이었고, 어떤 말은 방어였으며, 또 어떤 말은 설명하려는 척, 스스로를 숨기기 위한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말이 빠져버린 순간들—사람이 말을 멈추고, 공간이 조용해지고, 시간이 말 없이 흘러가는 그 ‘멍한 틈’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더 정확하게 이해했던 적이 있다. 그건 어떤 위대한 공감의 순간도, 똑부러진 표현도 없이, 그저 눈빛 하나, 고개를 돌리는 방식 하나, 숨 고르는 템포 하나로 이루어진 이해였다.


사람은 그렇게 말 없이도 서로를 오해하고, 또 그렇게 말 없이도 서로를 안다.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해프닝처럼 사랑하고, 다투고, 멀어지고, 어쩌다 다시 가까워진다. 침묵은 때로 말보다 더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고, 말은 때로 침묵보다 더 단단한 벽이 된다. 나는 어떤 중요한 관계에서, 무수한 말을 주고받던 어느 날보다, 그저 같이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시간이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은 말이 아니라, 말이 필요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말이 무엇을 감추고 있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말은 때로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기 전의 두려움을 가리는 커튼일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와 있을 때 침묵을 견디게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말하지 않음이 오해가 아니라 말이 닿은 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말이 제대로 시작될 수 있음을, 나는 말의 침묵 속에서 처음 배웠다.


그날 이후, 나는 문장을 쓴다는 것이 말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말을 거두는 일이었다. 너무 많이 말했던 나의 말들을, 너무 늦게 꺼낸 진심들을, 입이 아닌 귀로, 언어가 아닌 몸으로 다시 되돌려받는 일. 그것이야말로 말 앞에서, 사람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고백이었다.


말은 그날 이후에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서 있었고, 계절이 바뀌고 빛이 달라져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거절이 아니라 허락이었고, 무관심이 아니라 기다림이었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말 없는 생 앞에 서면 지금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말이 생의 형태로 머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말이 되지 못한 것들까지 삶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말은 말이 없지만, 나는 그 앞에서 다시 말을 배우고 있다. 말보다 느린 것들, 말로는 닿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끝내 말이 되지 않는 마음들. 그것들을 살아내기 위한 말이, 지금 이 글 안에서 아주 천천히 피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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