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는 그 날카로움으로 천을 뚫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그 송곳이 두터운 옷감 속에 갇혀
제 아무리 날이 서 있다 해도 좀처럼 꺼내질 수 없는 상태다.
송곳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의 증명은 너무 더딘 시간 속에 파묻혀 있다.
나는 문득 묻는다.
계속 옷감에 밀착된 채 문지르고 또 문지르면
정말 언젠가는 구멍이 날까?
실은 지금, 그 믿음 하나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시절이 맞아야 한다.
그 시절이란 계절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과 방향이다.
에너지가 흐르고, 교차하고, 순환하고,
서로 돕는 맥락 안에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
시절이란,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큰 에너지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나 혼자의 숨결로 바꿀 수 없고,
그 흐름에 다다르기까지는 묵묵한 기다림과
삶 전체를 조율하는 일종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리고 운이 필요하다.
운은 하늘의 일이다.
우리는 자주, 인간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그저 하늘이 열릴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운은 내가 흘린 땀과 하늘의 마음이 만나
아주 조용히 문 하나를 열어주는 그런 기묘한 순간이다.
그러나 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그 운은,
스스로의 한계를 진심으로 자각하고
그 자각 위에 묵묵한 실천을 올리는 사람에게
언제부턴가 조용히 다가온다.
인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운이 깃들 준비를 갖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연이 필요하다.
인연은 일을 이루는 마지막 단추와도 같다.
시절이 맞고, 운이 따를 때,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붙는다.
그 사람은 단지 도움을 주는 이를 넘어
내 인생의 문장을 완성해주는 문장부호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귀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이에게
사람은 귀인이 되어 돌아온다.
심지어 악연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에게 웃을 수 있다면,
그 인연은 내 안에서 더 이상 상처가 아닌
하나의 공부가 된다.
나는 여전히
두꺼운 옷감 속에서 무딘 송곳처럼 문질러지는 중이다.
뚫릴 듯 말 듯,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삶의 내면에서 침묵으로 갈고 닦는 중이다.
언젠가 그 천이 찢기는 날,
내 안의 빛도 함께 튀어나오리라 믿는다.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내 안의 송곳은
보이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