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관상 이야기
우리는 예전부터 볼상 사나운 사람을 보면 “꼴값하고 있네”라며 욕처럼 내뱉곤 했다. 눈에 거슬리는 옷차림, 제 분수도 모르는 말투, 혹은 그냥… 괜히 마음에 안 드는 얼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무심한 듯, 그러나 분명한 평가를 담아 말했다. “꼴값하고 있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말이 꼭 욕이기만 한 걸까. 사람이 자기 ‘꼴’의 ‘값’을 하며 살아간다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 아닐까. 문제는, 오히려 자기 꼴값조차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 아닐까. 나는 지금부터 내가 오랫동안 관찰하고 사유해온 관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짠하게, 무엇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당신과 함께 나누려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관상을 이야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관상은 얼굴만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얼굴을 중심으로 보지만, 사람을 읽는다는 건 단 하나의 부위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진짜 관상이란, 체형과 뼈의 구조, 체온과 체모, 걸음걸이와 목소리의 톤, 앉은 자세와 표정, 제스처까지도 포함된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스며든 기질과 흐름을 조용히 읽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관상은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니다. “입술이 두껍다”는 이유로 “말이 없고 입이 무거울 것이다”라고 단정한다면, 그건 관상이 아니라 편견에 가깝다. 관상이란, 겉모습만 보고 성급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속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겸손한 눈에서 시작된다.
꽃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꽃이 어디서 피었는지, 줄기는 얼마나 바람에 시달렸는지, 잎사귀는 어디가 찢기고 또 어떻게 다시 피어났는지, 그 모든 사연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늘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을 올려다본다.
관상은 내 눈높이를 상대보다 위에 두고 내려다보는 학문이 아니다. 사람을 본다는 건 표면을 읽는 일이 아니라, 속살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글을 굳이 읽지 않으셔도 된다. 관상은 사람을 분류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연민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깊고 조용한 관상의 연못으로 독자들의 손을 살며시 잡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려 한다. 물은 맑고 어둡고, 그 아래에는 삶의 진흙도, 빛나는 돌멩이도 함께 잠들어 있다. 우리는 그 안을 함께 걸으며 사람의 얼굴을 따라, 그 얼굴 아래 숨은 이야기들을 따라 천천히 관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려 한다.
자 신발끈을 단단히 묶자. 준비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