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진실

by 이 경화

세수를 하다 문득 고개를 들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누구나 세수를 하고 난 후의 얼굴이 가장 어려 보인다. 아니, 어쩌면 어리고 싶어지는 얼굴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미간에는 약간의 주름이 패여 있었고, 제주는 햇볕이 강해서 인상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간의 주름은 어떤 일에 매진할 때, 분명한 생의 목표가 생길 때 생기는 일종의 훈장이며 표식이다. 몰입의 다른 이름, 그래서 나는 이 미간의 주름을 조금 더 아끼게 되었다.


나는 항상 매일 아침 내 눈빛을, 낯빛을 체크한다. 나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또 다른 나, 눈빛과 내 낯빛이 그걸 고스란히 말해준다. 나는 내 눈의 너머로 나의 자존을 인식하고, 매일 습관처럼 내 자존을 일으켜 세운다. 젊을 때보다는 약간 흐릿해진 눈이지만, 명징할 만큼 맑은 내 검은 눈동자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떤 날은 내가 참 낯설을 때가 있다. 전날 많은 상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어제 설명할 수 없던 고독의 밤을 지낸 아침도 모두 내 눈과 낯빛이 그것을 대신한다. 익숙한 내 모습도, 낯선이 같은 내 얼굴도 모두 사랑한다. 그 얼굴은 분명, 어제라는 험준한 계곡을 넘은 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가의 주름 하나, 그리고 잡티 하나도 모두 나인 것을 인정한다.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의 얼굴을 알게 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모든 날들을 용서하게 된다." — 파스칼 키냐르. 그러고 보니, 내 얼굴은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왔을까. 소녀였던 시절의 얼굴이 있었다. 세상의 언어보다 더 빨리 웃었고, 작은 상처에도 마음이 금세 흔들리던 그 여린 얼굴. 웃음이 금방 번졌고, 눈물이 겁 없이 흘렀다. 나는 그 시절 나의 얼굴을 무방비 상태의 풍경이라 부르고 싶다. 무엇에도 덜 물들고, 덜 조심스러웠던 생의 초본이 그 얼굴에 담겨 있었다.


그 얼굴은 이제 사진 속에만 있다. 사진 속 나는 늘 밝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어쩌면 그 빛이 누군가의 기대를 향한 긴장감일 수도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괜찮은 아이"의 얼굴을 연기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얼굴은 내가 아닌 타인의 평가로 다듬어졌고, 그때부터 나는 내 얼굴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시절을 지나 어느덧 중간쯤에 와 있다. 젊음이 남아 있고, 노년이 예고된 얼굴. 두 시절의 경계 위에서 나는 드디어 내 얼굴을 나의 것으로 회복해가는 중이다. 남이 좋아할 얼굴이 아니라, 내가 살아낼 얼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얼굴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나의 노년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바란다. 그 얼굴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품게 되기를. 잔잔한 주름 하나에도 누군가를 용서한 흔적이 있고, 누군가를 끝내 사랑했던 주름이 남기를 바란다. 잡티 하나도 "나는 내 편이었어"라고 말해주는 작은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매일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이 얼굴이 과연 진짜 나일까, 아니면 수년 간 정제하고 길들여 사람들이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완성해온 익숙한 하나의 페르조나일까.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른의 얼굴, 딸의 얼굴, 누군가의 동료, 그리고 때로는 아무도 모르게 짊어진 ‘괜찮은 사람’의 얼굴까지. 그 모든 가면들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의 궤적이며, 외면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 역시 그런 얼굴을 쓰고 오랫동안 살았다. 기대에 맞추고, 침묵하고, 웃으며 넘기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진짜 내 표정이 가면 속으로 숨어버리곤 했고, 가면을 벗은 순간의 내 얼굴이 도리어 낯설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페르조나의 뒤편에 언제나 조용히 앉아 나를 바라보던 또 하나의 얼굴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고, 그 얼굴이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도 존재하는, 가만히 있어도 충분한 나라는 걸 이제는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가는 중이다. 그 얼굴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얼굴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얼굴이며, 마지막까지도 숨기고 싶지 않은 내 가장 정직한 본질이 담긴 얼굴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습관처럼 미간의 주름을 만져보고,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조금 전까지 수많은 기억과 얼굴들을 지나온 이 얼굴이 지금, 이곳, 이 시간의 내가 맞다는 것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예전보다 말간 얼굴은 아니지만, 더는 무언가에 쫓기지 않는 표정. 누군가의 시선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눈빛. 그리고 사랑한 시간만큼 무너진 얼굴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이 아침, 받아들인다.


문득 떠오른 한 철학자의 말이 내 생각에 닿는다.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 안에 존재했던 진실에 조용히 동의하는 일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나는 이제 그 진실에 조금 더 고요히 동의하며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