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락시아를 꿈 꾸며

by 이 경화


내 젊은 시절에는 아타락시아를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해왔다. 온 세상이 요동치고 사람들의 감정이 폭풍처럼 부딪히는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 하나를 지니는 것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축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흔들리는 폭풍 한가운데서 작은 미동도 없는 영혼을 갖기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심각한 삶의 오류였는지도 모른다. 삶은 결코 멈춰 있지 않았고 세상은 결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나는 끝없이 흔들리고 다치고 때로는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나를 바꾸는 일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었고 나는 그 삶의 폭풍우를 정면으로 마주치고 버티고 뿌리내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몰랐다. 세상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는 동안 내 안에서도 천천히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그 작은 균열을 내가 모른 건 아니었다. 그 균열이 햇빛을 받아들이는 통로였고 바람이 지나가게 하는 작은 골짜기였다.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존재라도 마음속에 틈 하나 없이 살아낼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폭풍우에 떠밀려 가지 않게 그동안 많은 삶의 힘이 생겨났지만 그 따뜻하고 훈풍이 부는 틈을 돌보지 않고 살았다. 나를 지키느라 바빴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내 안에 스며들어오던 작은 온기를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한때는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주저앉을 만큼 연약했으나 또 한때는 삶이 아무리 무너져 내려도 그저 묵묵히 걸어가야만 했던 시간을 통과했다. 겨울이 끝날 줄 모르던 시절도 있었고 마음 한편이 텅 빈 채로 살아야 했던 계절도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버텨낸 것이 아니라 그 균열 덕분에 살아남은 것임을.


나는 무엇을 애토록 갈망하고 살아왔는지 지난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니 내가 갈망해왔던 것은 그 틈으로 나에게 다 스미고 있었다. 나는 너무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 했고 너무 치열하게 싸우면서 사랑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조용히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틈 사이로 내게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정말 별것 아니게 지나가는 무심한 하루가 스쳐 가는 잊힐만한 인연이 소소하게 재미나서 깔깔거린 그 순간이 나에게 그토록 열망해왔던 아타락시아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크고 빛나는 순간은 오히려 내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시간들 속에 있었고 가장 깊은 평화는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 속에 고요히 피어 있었다.


무엇을 열망한다는 것은 항상 결핍과 갈증의 상태라는 반증이다.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고 이룩하려 하고 증명하려 했던 이유가 결국 내 안의 공허를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무엇을 열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갈증과 결핍의 공허를 조용히 통과해온 상태라는 것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다다를 수 있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끝없이 무언가를 꿈꾸고 열망하고 추구하는 이유는 완전함을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핍은 저주가 아니다. 결핍은 오히려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다른 존재들을 향해 마음을 여는 문이 되어준다. 아타락시아는 결핍을 부정하는 평화가 아니라 결핍과 나란히 걷는 평화다. 나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수용할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나 하나의 문장을 얻기 위해 그간 오십 년 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지 않고 누군가의 기대를 좇지 않고 정말 나답게 사는 것 정말 나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수없는 폭풍과 고요를 견디며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조용히 아주 작고 단단한 목소리로 나만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 누구에게 보여지는 내가 아니라 나에게 정말 나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으로 나는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삶의 그 틈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그 시점에 조용히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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