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

by 마르치아



브런치북에 쌓여 있던 내 글에 라이크가 수북하게 달렸었다. 그리고 며칠 전, 브런치북 측에서 내가 발행한 매거진을 POD 형식으로 출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POD란 책을 구매할 사람이 주문을 하면 그 주문에 맞춰 전자책 혹은 종이책으로 제작되어 배달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글이 단지 스크롤 속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의 손에 닿는 실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드디어 나도 ‘출간’이라는 문 앞에 다다른 걸까. 입꼬리 한쪽이 저도 모르게 실룩거렸다. 기쁨이라기보다, 오래 기다린 감정이 어딘가 삐뚤게 삐져나온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실룩거림이었다.

예전에 관상 칼럼을 연재했던 신문사가 폐간되는 바람에, 그 글들이 허공에 흩어져 버리는 듯해 안타까웠다. 아까운 마음에 그 글들을 다시 브런치북에 매거진으로 엮었다. 사실 올해는 꼭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이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자라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급하게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글이란 건 결국 삶의 침전물이니까. 충분히 가라앉고, 발효되고, 시간이라는 이끼가 천천히 감싸준 후에야 비로소 스스로 발아하는 법이다.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글을 막 쓰기 시작하던 시절, 어느 기관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사했다. 내 글이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내게는 아직 세월이 부족하다는 자의식이 강했다. 나는 삶과 문장이 어느 정도 나이를 같이 먹어야 한다고 믿었고, 무르익지 않은 글이 등단이라는 말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다. 등단은 단지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도 진실할 것’이라는 서약 같았다. 그 서약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살아냈을 때, 비로소 내 글도 바깥 세상과 만날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등단을 미뤘다. 세상에 글을 내놓을 용기보다는, 아직 내 안의 침묵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는 사이 간장도 조금씩 약간장이 되고, 나의 문장도 그 사이 조금은 덜 날카롭고, 조금은 덜 화려한 방향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 변화가 좋아서, 오히려 세월을 더 붙잡아두고 싶었다. 기교보다는 진심이, 화려한 구조보다는 여백이 많아진 내 문장을 바라보며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은근히 감사하게 여겼다.

올해 몇 달 동안 꾸준히 써온 글만 해도 벌써 200편이 넘었다. 이 글들은 그냥 일기가 아니다. 매일매일의 사유와 관찰, 기억의 이끼와 감정의 격류를 꾹꾹 눌러 담은 작은 수확물들이다. 나는 그것들이 내 안의 들판에서 자라난 작은 벼이삭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가뭄이었고, 어떤 날은 홍수였다. 그럼에도 매일 앉아 쓰는 이 행위는, 나 자신에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해주는 일종의 인사였다.

글을 쓰다 보면, 때때로 외할아버지와 함께하던 국어 노트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던 그 노트. 할아버지는 내가 글을 쓰기 전에 연필심을 최대한 뾰족하게 깎아두셨다. 그 단정한 연필심이 종이 위에 처음 닿을 때의 감촉. 나는 지금도 글을 시작할 때면, 늘 그 첫 느낌을 마음속에서 꺼내어 쓴다. ‘무엇을 쓰고자 하는가’보다, ‘어떻게 쓰고 싶은가’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성실함만으로 유지되는 일이 아니다. 삶의 모든 조각들—분노, 회한, 사랑, 침묵, 실패, 희망, 헛된 기쁨마저도—그 모든 것이 내 문장 속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문장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다. 삶의 어느 순간,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었고, 그때 글만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내가 쓴 문장이 나를 먼저 위로했고, 그 문장이 타인의 마음속으로 건너가 또 누군가의 밤을 밝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더 이상 헛되지 않다.

글은 씨앗이다. 내 사유와 경험, 침묵과 탄식, 그 모든 것이 한 뼘의 떼루아를 지나 어느 날엔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뿌려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씨앗이 흙 속에서 싹을 틔우고, 어느 날 우연처럼 피어나는 문장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혹은 눈가에, 작은 떨림을 전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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