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산의 이야기
"산은 내 안에 먼저 자랐다."
나는 산을 품고 살아간다. 어릴 적부터 산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도시의 빌딩숲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숨 쉬는 나무와 바위와 이끼가 있는 산. 사람의 말보다 바람의 말이 더 크게 들리던 곳. 그곳에서 나는 울고 웃고 길을 잃기도 하고 길을 찾기도 했다. 산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형상이자 내면의 은유였다. 언제나 나보다 크고 깊고 오래된 어떤 존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 그것은 때로 위로였고 때로 경계였다. 나 자신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경계이자 나를 안아주는 포옹. 그래서인지 나는 삶을 말할 때, 늘 산을 끌어다 비유하게 된다. 내 마음의 구조는 산을 닮았고 내 영혼의 흐름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순례와 같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수미산은 우주의 중심에 솟아 있는 상상 속의 봉우리다. 삼천대천세계가 그 산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육도윤회하는 중생들이 그 둘레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수미산의 정수리에는 제석천이 머물고 그 아래로 사천왕과 인간과 지옥의 세계가 차례로 내려앉는다. 나는 이 구조를 볼 때마다 내 과거를 떠올린다. 내 안에도 그런 층위가 있었고 오랜 시간 나는 그 안을 오르내리며 살았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고통 마음 한편에만 자리 잡은 상처 반복되는 실수와 그로 인한 자책. 그것은 마치 수미산의 중턱 어딘가에 걸려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한 채 머물러 있던 나의 과거 같았다. 수미산은 나에게 시간의 산이다. 되돌아갈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나의 일부로 남아 있는 그런 고요한 구조물이다.
나는 때때로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산을 느낀다. 그 산은 불가의 상징이 아니라 서양의 신비 안에서 솟은 또 다른 고요함이었다.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은 그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 자서전이자 영혼의 진심 어린 순례 기록이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기까지의 내적 여정을 일곱 개의 층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 층은 지적인 설계가 아니라 그의 고백과 통회 결단과 침묵 회심과 기도가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영혼의 계단이었다. 나는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깊고도 많은 그림자를 안고 있는지 절감했다. 칠층산은 나에게 미래의 상징이다. 나는 아직 그 산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그 산을 오를 준비를 하게 되리라는 직감은 늘 마음속에 살아 있다.
머튼이 말한 그 침묵의 고도는 신에 도달하기 위한 결핍의 오름이었다. 그는 신을 간절히 원했으나 동시에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거칠고 복잡한지 알고 있었기에 그 등정은 더욱 정직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의 칠층산은 완전한 순례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고백이었고 나 또한 그런 고백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다. 언젠가 내 안의 계단이 하나씩 형성되기를 지금의 혼란조차 언젠가 한 층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며.
수미산은 불교의 세계관 안에서 삶과 죽음의 윤회를 설명하는 구조적 중심이다. 인간이 태어나고 사라지며 다시 되돌아오는 끊임없는 윤회의 수레바퀴. 그 산은 모든 생의 층위를 품고 있지만 결코 그 누구도 거기 머물 수 없다. 고통도 그 아래 있고 신도 그 위에 있으되 인간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오르고 내려오며 자신을 확인하고 또 잊는다. 반면 칠층산은 기독교적 구원과 회심의 상징이다. 위로 향하는 직선적 구도 안에서 영혼은 내면 깊은 고백을 통해 신을 향해 나아간다. 세속에서 성속으로의 전환. 침묵과 기도의 반복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깨뜨리고 조용히 다시 빚는다. 칠층산은 나에게 아직 오르지 않은 언약의 계단이자 마음속의 비전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한라산이 언제나 나의 하늘이자 뿌리로 존재하는 이 땅. 그 산은 신화나 구조 속에 있지 않고 실제의 냄새와 바람과 이끼를 가진 살아 있는 산이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이고 누군가에게는 배경이겠지만 나에게 한라산은 일상 그 자체이며 내가 숨 쉬고 울고 웃는 삶의 중심이다. 나는 이 산 아래에서 내가 해야 할 삶의 태도를 배운다. 꾸준히 존재하는 것 다 말하지 않아도 품는 것 맑고 때로는 거친 날씨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 한라산은 나에게 오늘을 살아가게 해주는 실재이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를 선택한다. 수미산이 나의 과거라면 칠층산은 내가 오르고 싶은 미래이다. 그리고 한라산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발 딛고 있는 현재이며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몫의 삶을 묵묵히 감당하는 자리이다. 누군가를 보듬고 나를 내려놓고 어제와 내일을 연결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다정하게 살아내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 세 산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세 겹의 시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미산은 고통과 윤회의 기억을 품고 있고 칠층산은 아직 닿지 않은 신의 계단을 품고 있다. 그리고 한라산은 오늘도 바람을 품으며 나를 현실 속에 단단히 붙들어두고 있다. 세 산은 서로 닮지 않았다. 높이도 다르고 구조도 다르고 말하는 언어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세 산 모두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마치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시간이라는 하나의 강물 속에서 서로 엇갈리고 겹쳐지듯이. 때로 나는 수미산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때로는 칠층산의 침묵 앞에서 내 안의 부끄러움을 마주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한라산의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사랑을 건네고 아주 평범한 일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세 산은 나를 닮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정체되지 않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끝내는 비워지는 방법을. 그 깊이 안에서 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되고 또 다시 걷고 싶어지는 마음을 품게 된다.
산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너는 누구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늘 작아지고 늘 진심이어야 했다. 그 진심은 때로 나를 울렸고 때로 나를 일으켰다. 결국 산은 나에게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과거라는 수미산. 현재라는 한라산. 미래라는 칠층산. 나는 이 세 산을 날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