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만 비껴가는 듯하고, 세상일이 녹록지 않을 때 나는 뜨거운 국물에서 힘을 얻는다. 속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그 묵직한 온기에 마음도 함께 풀어지는 듯하다. 입술을 살짝 데일 것 같은 뜨거운 국물을 한 수저 떠넣으면, 그 순간 생이 나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한 황홀함이 찾아온다.
너무도 추운 겨울날이었다. 길 위에서 방황하던 마음을 잠시 붙들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달려갔다. 겨울바다를 보고 싶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그 풍경 속에서 나를 정리하고 싶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다 쓰러져가는 작은 항구의 한 식당에 들어섰다. 허름한 간판, 낡은 나무 테이블, 그리고 바쁜 듯하면서도 한없이 느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주방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는 무심하게 일어나 나를 한번 훑어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돌아가셨다. 그 순간 문득 _도덕경_에 나오는 덕산 스님과 노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을 것인가? 마치 내게 그렇게 묻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메뉴를 두고 잠시 머뭇거리자 할머니는 짧게 말했다.
"그냥 국밥 먹어."
선택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잘 익은 무 석박지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 단출한 찬이었지만, 석박지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국밥은 믿어도 된다. 할머니의 손맛에는 긴 시간의 내공이 녹아 있었다.
오 분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커다란 그릇을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국밥 한 그릇이었다. 국물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손을 모아 그 온기를 느끼고,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 순간 모든 추위가 사라졌다. 뜨거운 국물이 속을 타고 내려가자, 가슴 한쪽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날은 생이 딱히 불만스러운 것도 아니었지만, 추운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허름한 식당에서,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이 내게 이런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감탄하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셨다. 처음으로 본 미소였다. 그 미소와 뜨거운 국물, 그리고 그 순간이 어우러지면서 나는 깊은 안도 속으로 빠져들었다.
음식은 추억과 함께한다.
그날 국물 한 그릇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