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여년간 6시 근처에 일어난다. 여섯시 근처면 몸이 반응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갑상선 호르몬제랑 혈압약을 삼킨 후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오늘 하루 어떤 문장으로 살아야 하나 생각해 둔다.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내 영혼으로 들어온다. 어떤 문장은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내 과거의 문제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잊고 살았던 감정이나 꼭 오늘은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는 작은 다짐이다. 이런 한 문장으로 아침 기도를 시작한다. 아침 기도는 절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길지도 않지만, 오늘 하루 안에 일어날 법한 기적들을 그리고 떠오른 문장 하나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아침기도가 끝나고 눈을 뜨면 영혼이 맑아져서 그런지 시야가 그렇게 밝아진다. 아침의 일상이 평화롭게 시작되길 바라면서 기도와 현실이 시작되는 그 시점, 정말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런데 그 감사도 거하지 않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그 존재. 오늘 하루가 주어졌다는 시간. 내가 만나질 인연들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 이런 것 자체가 있다는 것에 감사가 일어난다. 이 충만함을 어찌 문장으로, 단어로 표현하랴.
20년 넘게 이렇게 시작한 아침, 나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과 하루를 끝나는 그 시각에 나를 창조하고 나를 갈무리하며 여기 이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살고 있는 내 자신과 영혼을 위해 오늘 아침에도 하나의 문장을 생각했다. “괜찮아. 다 잘 되고 있어.” 라는 문장이다. 나는 오늘 하루 이 문장으로 살아가려 한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도 “괜찮아. 다 잘 되고 있어.” 라는 문장으로 위로해 주고 싶다. 등을 도닥이면서, 손도 잡아 주고 싶다. 말 대신 그 문장을 건네고, 눈빛으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 하루가 견뎌졌다면,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낸 거라고.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오늘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 단 하나의 문장이다. 나는 그 문장 속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 이 하루가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된다면, 오늘의 문장은 이렇게 쓰일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