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음(倍音)의 의자에 앉아
배음의 의자에 앉아
나는 지금 제주에 더 세인트라는 이름의 피정 센터를 기획하고, 설립 중이다.
이곳은 단순히 신앙을 위한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상처가 고요히 내려앉을 수 있는 휴식의 장소이자,
음악과 예술, 그리고 공동체가 다시 어우러지는 무대를 품은 곳이다.
음악회와 소규모 웨딩, 전례와 사색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나는 때때로 클래식 공연을 기획한다.
‘때때로’라고 말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준비와 침묵의 시간이 숨어 있다.
공연 하나를 기획하는 데 보통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아이디어 하나가 마음에 씨앗처럼 뿌려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오직 관객의 의자에 앉아 상상한다.
그들이 어느 순간 고개를 들고 숨을 멈추는지,
어떤 악장이 지나갈 때 눈을 감고 가슴을 쓸어내리는지를
나는 미리, 아주 오래 바라본다.
처음 시작은 늘 하나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어떤 소리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지만
그 날의 햇살과 공기, 그리고 침묵 속에서 튀어나온 음 하나가
나를 기획의 시작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작은 배음(倍音)이 점점 공간을 물들인다.
이 공연이 어디에서 울려야 하는지,
누가 그 무대에 올라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하나하나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맞춰간다.
아티스트 섭외, 기획 회의, 레퍼토리 구성,
무대 디자인, 조명 구도, 진행 멘트 작성, 동선 배치.
거기에 리허설 공간 협의, 악기 대여,
공연 당일을 위한 홍보물과 인쇄물까지.
그 어떤 것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는 관객의 의자에 앉아서 다시 본다.
그 포스터가 공연장 앞에 걸릴 때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출지를 상상한다.
그 한 장의 종이가 음악의 예고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초대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 위에 아티스트가 선 순간부터,
무대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호흡은 공간에 퍼지고,
그 공간은 관객과 연결되며,
그 관객은 다시 울림이 되어 무대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걸 ‘배음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좋은 연주란 아티스트의 기량이 폭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들의 음과 에너지가 관객과 함께 어울려 공간에 울리는 예술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일종의 ‘공명’이다.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여운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관객의 의자에 앉아 공연을 기획한다.
기획자로서의 나만의 원칙은 단순하다.
모든 것은 관객의 마음에 닿아야 한다.
그게 감정선이든, 레퍼토리든, 배우의 연기든,
심지어 무대 사이의 침묵까지도
관객의 시간 위에 착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가 눈을 감고 듣고 있을 때
그 침묵이 음악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무대 위의 성악가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순간
그 공기가 누군가의 눈가에 닿기를 바라면서
나는 하나하나를 조율한다.
공연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무대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삶의 단면이자, 감정의 농도이며,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식이다.
그래서 나는 무대를 장식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워내고, 숨기고, 닦아낸다.
어디에 힘을 주지 않으면,
어디서 힘이 살아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악가들과는 연기적인 부분까지 함께 조율한다.
음악과 감정이 충돌하지 않게,
공기와 리듬이 지나치지 않게.
숨이 들어가는 타이밍조차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뜨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의자에 앉아 그들의 표정을 바라본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눈부시지 않지만 오래 남는,
한 음이 아니라 그 음의 여운까지 안고 가는
배음의 기획.
공명의 예술.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기획자이자 청중이 되고,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