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어느 순간은 초라하게, 또 어느 순간은 분노에 휩싸여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더라” 하고 고개를 떨구곤 한다. 그러나 삶은 단단한 의지를 가진 이들의 것만은 아니다. 부드럽고 느리더라도, 끝까지 걸어내는 이들에게 삶은 조용한 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는 우리가 지녀야 할 세 가지 ‘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초심, 중심, 그리고 뒷심이다.
우리는 자주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그리움과 자책이 함께 섞여 있다. 초심은 단지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왜 이 일을 하려 했는지에 대한 순수한 동기이며, 세상에 물들기 전의 가장 단단하고 투명한 결심의 순간이다.
초심이란, 오염되지 않은 나의 마음이자 세상이 손대지 못한 나만의 기도문 같은 것이다. 그것은 외부의 소리보다 내면의 울림이 더 컸던 시간이고,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했던 그때의 나를 말한다. 우리는 일이 틀어졌을 때, 관계가 멀어졌을 때, 삶의 무게가 처음의 목적을 잊게 만들었을 때, 그제야 초심을 떠올린다. 삶도, 사업도, 나라도, 가정도 결국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제 자리를 찾는다. 처음이라는 그 단정하고 떨리던 마음. 그 순간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놓치고 있는가.
귀가 얇고, 자아가 약해질 때 우리는 쉽게 흔들린다. 사람의 말 한 마디, 세상의 평가 한 줄, 내가 아닌 남의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중심은 흐려진다. 그러나 살아보면 안다. 두꺼운 나무보다 바람에 스르륵 휘어지는 풀 한 포기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중심이란 강함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때론 구멍이 있어야 한다. 마치 갈대처럼,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스쳐 지나갈 구멍.
그 구멍을 통해 바람은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니 우리는 바람과 싸우는 대신, 바람을 들여보내야 한다.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흔들리는 법을 알고, 그 속에서 다시 중심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자신을 불안해하며 더 강해지려 애쓰지만, 실은 중심이란 흔들림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한없이 유연한 것만이, 꺾이지 않는다.
살며 뒷심이 없어서 전쟁은 치열하게 치렀지만 전리품 하나 얻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 계획은 거창했지만 마무리가 허술한 이들. 처음엔 강렬했지만 끝은 흐릿한 이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자주 마주친다. 의욕은 넘쳤지만 지속할 힘이 없었던 사람들. 뒷심이란, 끝까지 가는 힘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천천히, 꾸준히,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완주에 도달한다. 첫걸음보다 마지막 걸음이 더 어렵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풀릴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뒷심은 조용히 뒷자리를 지킨다. 끝까지, 끝까지 가보는 사람. 그는 결국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든다. 반대로 뒷심이 부족한 사람은, 늘 동기는 좋았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삶의 만족도는, 언제나 그렇게 낮게 깔려 있다.
초심으로 시작하고, 중심을 지키며, 뒷심으로 완주하는 것. 그것이 삶을 단단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세 가지 심은 결국 내 안에 있고, 때때로 잊히더라도 다시 꺼내 쥐면 된다. 삶은 긴 숨이다. 끝까지 숨을 쉬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