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에서 보내는 편지

그대에게

by 이 경화


#곶자왈에서보내는편지

#청수곶자왈

#카페청수리


― 그대의 숨결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계절의 가장 부드러운 오전, 나는 곶자왈 한가운데 앉아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무와 바위와 빛, 그리고 바람이 조용히 어울려 서로를 위로하는 이곳에서, 그대에게 마음 한 자락을 띄웁니다. 혹시 당신은 지금 어디쯤 서 있나요? 바쁜 하루 속에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쉼표는 있나요? 그 질문이 당신의 마음에 조용히 머물기를 바라며, 나는 이 숲에서 느린 글씨로 편지를 씁니다.


곶자왈은 말하자면, 뿌리와 돌이 서로를 껴안고 살아가는 숲입니다. 이곳엔 길이 없습니다. 누가 일부러 만들지도 않았고, 누가 다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수천 년을 품은 바위 위에, 고사리 하나, 나무 하나가 제 맘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불규칙함이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정돈된 것보다 깊은 질서를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지요. 우리의 마음도 이 숲과 닮아 있다고.


당신도 그런 날이 있었을 거예요.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진 듯한 느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 나만 제자리에 머문 것 같고, 세상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 같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이 곶자왈을 떠올립니다.


여긴 언제나 같으면서, 매번 다릅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선 나무도, 오늘은 조금 더 초록빛이 짙고 어제 지나쳤던 바위도, 오늘은 그 위에 물이 고여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지요. 무심히 지나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면 숲이 말을 겁니다.


“괜찮아, 너는 그대로도 괜찮아.”


그 한마디에 나는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말도 아니고, 책 속의 문장도 아닌, 그저 숲의 기척과 공기와 바람이 내게 말해주는 듯한 느낌. 이곳의 모든 생명은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그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아요. 그 모습이, 다정하고 또 고마웠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평가도 없이, 누군가의 기대도 없이,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닫는 시간.


곶자왈의 나무들은 대부분 곧게 자라지 못합니다. 땅이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나무는 비스듬히 자라고, 어떤 나무는 옆으로 뻗어 자랍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나요? 그 왜곡과 휘어짐이 오히려 이 숲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자연은 결코 ‘틀린 것’을 만들지 않아요. 다만 ‘다른 것’을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함께할 때 더 빛납니다.


당신도 그래요.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당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 빛나고 있어요. 비록 당신은 아직 그 빛을 보지 못할지라도, 당신을 아끼는 누군가는 분명 그 빛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바위 위에 앉아 조용히 손을 뻗어봅니다. 당신의 하루에 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어디선가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의 손끝에 이 숲의 공기, 햇살, 그리고 나의 기도가 가닿기를 바라며.


곶자왈에는 이름 없는 꽃들이 많이 피어납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고 지지요. 그 모습이 꼭 당신 같아서, 나는 자주 눈물이 납니다. 세상은 당신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할지도 몰라요. 당신이 쌓아올린 고요한 노력과, 아무 말 없이 삼켜낸 아픔을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숲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조금 느려도, 가끔 멈춰도. 이따금 눈물이 나도 괜찮아요. 그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고,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의 증명이니까요.


편지를 쓰다 문득,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내 무릎 위에 머뭅니다. 그 온기가 마치 당신의 손길처럼 느껴져 나는 오늘, 조금 덜 외롭습니다.


당신도 그런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하늘 한 조각만으로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날.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는 날.


그런 날이 늘 당신과 함께하길, 이 숲이 당신에게 작은 숨결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곶자왈을 찾게 된다면, 이 자리 어딘가에 남겨진 이 편지의 마음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그때, 이 숲은 당신을 꼭 안아줄 거예요.


#늘그대곁에서


#곶자왈의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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