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년’이라는 단어는 늘 시대의 그림자를 따라 변해왔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오십이면 이미 노년으로 불렸고, 집안의 가장자리에서 손주를 돌보며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나이였다. 그러나 백세 시대가 된 지금, 오십은 결코 마무리의 길목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점, 반쯤은 살아왔으되 여전히 반은 남아 있는 길 위에서 다시 출발하는 순간이다.
젊음의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늘 영원할 것만 같았다. 아침마다 찾아오던 설렘,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 밤새워 이어지던 웃음과 눈물. 그러나 중년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깨닫는다. 푸릇하고 아삭거리는 한 입의 과일처럼, 젊음은 그 안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하다가 지나고 나서야 그 달콤함을 실감하는 법이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우리는 젊음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빛깔을 띠는 시간을 배워간다.
나는 중년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풀처럼, 속이 비어 있어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줄기처럼, 단단하면서도 열린 마음. 신념은 있으되 고집스럽지 않고, 생각은 있으되 젊은 세대와 오가며 끊임없이 섞이고 흔들리는 마음. 과거에서 교훈을 배우되 그것에 묶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씨앗을 남기되 현재의 시련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내가 되고자 하는 진정한 중년의 모습이다.
세상은 지금 소란스럽다. 극단의 언성이 진실을 가리고, 서로의 얼굴을 잊게 만든다. 중심을 잡아야 할 세대가 흔들리고, 진정한 중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조용히 중심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중심을 가진 이들이 있어야 공정이 자리를 잡고,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길가에서 마주한 풀 한 포기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숙이지만 땅속 깊이 박힌 뿌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장마의 비를 맞으며 더 짙은 초록을 품고, 겨울의 눈을 이불 삼아도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운다. 풀은 약한 듯 보이지만 가장 강하다. 중년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삶의 무게에 주저앉을 듯 보이지만 다시 일어나고, 세상의 거센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년의 품격이고,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지혜일 것이다.
중년은 단순히 나이를 세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중심이 비로소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내 안에 작은 바람길이 열려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드나들고, 노년의 지혜가 머물며, 서로 다른 생각들이 오가고 스며드는 자리. 그것이 진정한 중년의 풍경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짐한다. 세상이 아무리 아비규환이라도, 나만이라도 중심을 바로 세우자. 풀 한 포기라도 꺾이지 않고 버텨야 한다. 중심을 잃지 않는 이들이 모여야 세상도 바로 선다. 그 중심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마음 깊은 곳, 그리고 오늘의 선택 속에 있다.
한들거리는 풀 한 포기를 보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중년은 약해 보이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시절이다. 흔들리되 꺾이지 않고, 쓰러지되 다시 일어나며, 결국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는 시간. 그것이 내가 살아내고 싶은 진정한 중년이다.
#풀한포기를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