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겁다고 느낄때
위로가 필요할 때는
애써서 어느 한 순간으로 몰입한다.
아씨씨의 가장 높은 언덕 로카 마조레에서 바라보았던 시내를 기억한다. 넓은 평원 사이에 서서 신에게 내 삶을 간곡히 물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올리브 밭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충만한 삶에 대한 대답을 찾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 내게 찾아왔던 절대적인 평화를 기억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고요가 내 안에 내려앉았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에게는 현재이고 또 누구에게는 과거였을 시간이라는 옷이 우리를 덮고 있다. 그 시간은 우리가 무엇을 충만하게 경험했는가에 따라 각자에게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나는 물음이 생길 때마다 자연에게 묻는다.
어떤 때는 따지듯 묻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연약함 때문이었고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지 못해 아이처럼 투정 부리듯 엄마에게 따지듯 자연에게 따져 묻던 날들도 있었다.
나는 고백한다. 그때의 질문들은 내 영혼의 떨림이었다고.
암 수술을 마치고 동위원소 치료를 3박 4일간 받고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치료라기보다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하루에 꼭 먹어야 했던 호르몬 약을 2주 동안 끊고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들로 가득한 힘든 식이 요법을 하면서 트렁크 하나를 끌고 병원을 나섰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그 길을 건너지 못했다. 그만큼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지쳐 있었다.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3박 4일간 독방에 갇혀 있던 병실을 나서던 날. 오월의 공기였다.
햇볕이 쏟아지며 벚나무 이파리들이 반짝거렸다. 나는 눈이 부셨지만 그 햇볕 한 줌으로 인해 내 삶 전체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났다.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듯 살아 있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날의 햇볕은 나에게 모든 삶의 답이 되어 주었다. 힘든 일이 닥치거나 내 삶의 물음이 다시 떠오를 때마다 나는 애써 그날을 떠올린다. 병원을 나오던 날 햇살 속에서 받은 절대적인 위로를 떠올린다.
시간은 누구에게는 과거이고 또 누구에게는 현재이며 어떤 이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나는 그 시간 위에 서 있다.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언제나 답은 단순하다. 과거의 기억을 꺼내 위로를 받고 현재의 숨을 쉬며 살아내고 미래의 시간을 향해 흘러간다. 그러나 그 단순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또 묻는다. 자연에게 묻고 구름에게 묻고 햇볕에게 묻는다. 그리고 내 안의 연약한 아이에게 묻는다.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한다. 기억 속 빛나는 한순간으로 돌아가 그곳에 앉아 다시금 경외심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나의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