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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싹을 보면서

모든 씨앗을 위해 건배

by 마르치아





바질싹을 바라본다. 흙 위에 돋아난 작은 초록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서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처럼 고요한 투쟁의 결과다. 아직은 향기를 내지 못하지만 이미 그 안에 향기의 약속이 들어 있다.


나는 바질싹을 보며 나를 떠올린다. 삶의 시작부터 나는 연약한 씨앗이었다. 태어나 육 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고 바닥에 내려놓을 수조차 없을 만큼 귀하게 자라야 했던 시간. 너무 이른 상실과 지나친 사랑이 뒤섞인 그 기억 속에서 나는 이미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궤적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약점이 아니라 나를 땅 속 깊이 묻어준 흙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흙 속의 씨앗은 어둠을 견뎌야만 싹을 틔운다. 나 역시 어둠의 시간을 여러 번 통과했다. 세상이 나를 꺾어버릴 듯할 때가 있었고 내 안의 무너짐이 너무 커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살아남았다. 무너짐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바질싹의 여린 줄기처럼 나 또한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냈다.


나는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이와 현실을 말하며 이제는 그만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내 안의 씨앗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아직 향기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언젠가 이 잎사귀가 무성해지듯이 나의 삶도 언젠가는 향기로울 것이다.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것이다. 다만 그 성장은 보이지 않는 깊은 자리에서 오래 준비된다.


인간의 존재는 완결이 아니다. 우리는 늘 미완성의 상태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미완이야말로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 남은 길이 있다는 의미다. 바질싹이 오늘은 작지만 내일은 더 크게 자라듯이 나도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나를 더 이상 실패한 씨앗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껍질이 찢어지고 흙 속에서 무너졌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바질싹은 말한다. 살아 있음은 이미 향기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꿈을 향해 다시 고개를 든다.


작은 초록 하나에도 진리가 담겨 있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흙을 뚫고 나와 햇살을 향해 선 이 연약한 존재 안에 이미 인간과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나를 다시 본다. 흔들리지만 살아 있는 나. 아직 향기를 내지 못했지만 여전히 꿈을 버리지 않은 나. 바질싹은 그 모든 나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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