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귀하게 여기는 법

오십이 비로소 넘어야 깨닫게 되는 것들

by 마르치아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나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간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특별한 철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나를 지켜보며 흘러온 마음의 결이었다. 젊을 때는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먼저 묻는다. 귀하게 여긴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처럼 대접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안에 들어온 귀한 손님이 되어 나를 맞이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존중하는 첫 걸음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내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잘 잤느냐고 오늘 하루도 고요하게 살아보자고. 그리고 정성껏 차린 식사를 나를 위해 준비한다. 그릇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지 않고 반찬 하나도 정갈히 담는다. 그것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형식이 아니라 내 안의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나를 손님처럼 대하면 삶이 조금씩 달라진다. 하찮아 보이던 시간조차 귀하게 느껴지고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정돈된다.


책을 읽을 때도 예전과 다르다.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내게 들려줄 조언을 찾기 위해 읽는다. 그 조언은 늘 나를 나무라지 않고 부드럽게 가르친다. 나에게 다정한 선생이 되어주는 일.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세상은 늘 외부의 목소리로 가득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니 생각도 습관도 점점 단순해진다. 복잡한 감정에서 멀어지고 어떤 일에도 덤덤해진다. 그저 귀한 손님을 대하듯 나를 아끼면 되는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남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진다. 남을 나처럼 대하게 되고 배려가 자연스레 몸에 밴다. 배려란 상대를 나처럼 여기고 상대보다 먼저 그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사람을 판단하는 일도 줄어들고 오히려 감사가 늘어난다.


나이 들어 추하게 늙지 않으려면 나 자신에게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단정히 가꾼다. 화려함이 아니라 단정함으로 나를 정돈한다. 머리를 빗으며 오늘의 마음을 가다듬고 얼굴에 바르는 크림 하나도 허투루 바르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위한 화장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작은 의식이다. 그 의식이 쌓여 나라는 존재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존중과 배려로 내 일상을 다듬는 습관을 들인다. 때로는 차를 우리며 앉아 내 안의 고요와 마주한다. 그 시간은 세상 누구와의 약속보다 귀하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세월은 나를 늙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이 듦이 슬픔이 아니라 숙성이라는 것을.


신기하게도 그러는 동안 자존감이 다시 피어난다. 누구에게 증명받지 않아도 괜찮고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나는 이미 나를 귀하게 부르고 있으니까.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니 타인의 존중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것은 계산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질서가 바로 선 상태였다.


남을 나처럼 대하고 나는 손님을 대하듯 나를 귀하게 대한다. 그 단순한 진리 안에 인생의 품격이 숨어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가졌던 시절에도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생각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나를 귀하게 여기는 생활이었다. 세상이 변해도 자신을 정갈히 돌보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예의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내 안의 손님을 정갈히 맞이한다. 하루를 보내며 미소 짓는 법을 배우고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늙는다는 것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빛을 잃어가며 더 깊은 색을 얻는 일이다. 나는 그 색이 어둡지 않기를 바란다. 세월의 농도가 깊어질수록 내 안의 빛도 더 단단히 여물기를 바란다. 잘 늙어가고 싶다. 누군가의 눈에 젊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끝까지 귀하게 여기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