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회라는 이름의 잔치국수

by 마르치아






잔치국수는 후회의 음식이다. 딱 그 한 줄에서 이미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잔치날 먹는 국수인데 왜 후회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대답한다. 소면의 양 때문이다. 국수를 삶을 때마다 사람은 늘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딱 1인분만 삶아 먹으면 먹다가 아휴 더 삶을 걸 하며 아쉬워하고 오늘 같은 날은 그 후회를 미리 막으려고 1.5인분을 삶아 먹다가 배가 부르고 숨이 막혀서 또 후회한다. 그러니 국수라는 음식은 늘 사람의 계산을 비웃는 음식이고 삶을 닮은 음식이기도 하다. 덜 삶아도 후회하고 더 삶아도 후회하고 결국 어떤 날은 후회가 국물보다 먼저 목을 넘어간다.





국수는 참 묘해서 양이 충분해도 마음은 늘 부족하다. 조금만 더 삶을 걸 하다가 결국은 배가 터질 듯 불러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러니 국수 앞에서 사람 마음은 늘 갈팡질팡이다. 욕심과 절제가 싸우는 곳이다. 적당한 양이라는 것이 항상 elusive 하고 늘 손에서 미끄러진다. 그래서 잔치국수 한 그릇 앞에서 나는 여러 번 내 삶의 욕심을 되돌아본다.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사람들에게서도 나는 늘 적당함을 몰랐다. 조금만 더 싶어 하다가 다칠 때가 많았고 또 어떤 날은 덜 준 마음 때문에 더 후회했다.




국수를 삶는 행위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심리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금세 투명해지고 하얘지는 소면이 마치 사람 마음 같아서 순간순간 흔들린다. 금방 익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젓가락으로 들어보면 아직 심지가 남아 있기도 하고 다 된 줄 알고 불을 끄면 삶이 덜 익어 툭툭 끊어진다. 그래서 삶도 국수처럼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마음의 불을 낮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뜨거우면 삶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익지 않는다. 참 버거운 조절이다.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구면 쫄깃해진 면발이 손끝에서 작은 탄력으로 살아난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지난 사랑들이 떠오른다. 너무 뜨겁게 다가오던 사람들이 있었고 너무 차갑게 멀어지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을 적당히 헹구지 못해서 뜨거울 때 잡았고 차가울 때 놓쳤다. 그래서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나는 늘 “적당한 온도의 인연”이란 게 과연 있는가 생각해본다. 적당함이 없는 사람이 적당함을 꿈꾸는 것 자체가 후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뜨거운 육수를 붓는 순간 김이 피어오르고 그 향이 마음을 감싼다. 멸치와 표고와 파와 다시마의 향이 겹겹이 쌓인 그 국물은 사실 사람의 마음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끓이면 우러나고 식으면 굳고 다시 끓이면 풀리는 단순한 원리. 그런데 사람 사이의 국물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식어버리면 다시 끓인다고 해서 옛날의 맛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잔치국수를 먹을 때면 식었던 마음들이 다시 끓어오르길 바랐던 지난 시절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삶이란 다시 끓여도 예전의 국물이 아닌 법이다.





잔치국수의 국물은 늘 맑고 투명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속은 얼마나 불투명한가. 웃으면서 울고 있고 괜찮다 하면서 부서지고 있고 밝은 척하면서 마음은 어둠을 견디고 있다. 옛날에도 나는 이런 눈과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익숙했다. 누군가는 활짝 웃으며 사진을 올리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나는 그걸 단번에 알아봤다. 그래서 나만 그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다른 이들은 칭찬하고 지나쳤지만 나는 그 안의 작은 겨울을 보았고 그래서 국물처럼 내 마음도 함께 뜨거워졌다. 사람의 속이 보이지 않을 때 잔치국수 같은 삶을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투명하게. 솔직하게. 적당한 온도로.





국수는 먹는 사람을 참 솔직하게 만든다. 목이 막히면 그대로 티가 나고 배부르면 젓가락이 멈추고 국물이 싱거우면 바로 간장이 간다. 그런데 감정은 그렇지 않다. 목이 막혀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배부르고 지쳐도 활짝 웃고 후회가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먼저 내뱉는다. 그래서 나는 잔치국수를 먹을 때만큼은 최소한 내 마음만큼은 솔직하고 싶다. 뜨겁다 하면 뜨겁다 하고 부족하다 하면 부족하다 하고 배부르다 하면 그만 내려놓는 용기. 그게 나를 살리는 작은 지혜였다.





후회라는 잔치국수는 그래서 이상하게도 위로의 음식이기도 하다. 후회하면서도 먹고 또 후회하면서도 삶고 그러다 보면 국수 한 가닥에 기대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나는 적당한 양을 계산하다가 결국 1.2인분을 삶았고 또 후회했고 또 웃었다. 삶은 이렇게 계속 국물처럼 끓어오르고 식어가고 다시 끓어오른다. 국수의 양처럼 마음도 늘 오차가 있다. 그 오차가 바로 인간의 매력이고 고집이고 사랑이고 슬픔이다.

그래서 나는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조용히 다짐한다. 후회가 따라오는 삶이라도 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금 덜 삶아도 조금 더 삶아도 나는 결국 나라는 사람의 국물을 견뎌내며 살아갈 것이다. 잔치국수 한 그릇 속에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고 앞으로의 시간들도 담겨 있다. 사람도 이렇게 따뜻한 국물처럼 누군가의 후회 속에서도 위로가 되는 존재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의 국물만큼은 다시 끓여볼 용기가 있다.







오늘도 나는 잔치국수를 먹으며 후회라는 양념을 조용히 삼킨다. 그러나 그 후회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살아 있다는 온기를 느낀다. 적당함은 모르지만 진심은 알고 욕심은 많지만 상처도 많고 후회는 깊지만 사랑도 그만큼 깊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잔치국수처럼 생각한다. 덜 삶아도 더 삶아도 결국 한 그릇의 온기로 나를 채우는 일. 그리고 국물 한 모금에 나는 또 웃는다. 결국 삶이란 잔치국수처럼 후회하면서도 끝내 다 먹게 되는 음식이니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