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절로 어머니 앞에서 매일 두 손을 모았다.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나는 중풍으로 매일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손을 했다. 대상도 없었고 형식도 없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아홉 살의 소녀가 무릎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기도는 늘 같아 보였지만 날마다 달랐고 숨결마다 달랐다. 어린 나는 기도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두 손이 먼저 모아지고 마음이 먼저 허물어졌다. 절박함은 사람을 가르친다. 절박함은 본능의 선에 손을 얹게 하고 그 선 위에서 떨면서도 버티게 한다. 나는 그렇게 기도를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른 소원이 입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매일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흘리셨다. 방 안은 피 비린내가 진동했고 우리는 매일 굶기가 일쑤였다. 오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의 기도는 어머니가 낫기를 바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다른 바람을 품었다.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이 고통만이라도 제발 거두어 달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애원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의 무게와 결과를 모르고 말했지만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입술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신은 내 기도를 정확히 들어주셨다. 기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응답될 때가 있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나는 어쩌면 차라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매일 아프고 굶으며 죽음보다 깊은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차라리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두려움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홉 살의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는지 아니면 끝없는 절망의 항복이었는지 여전히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날 진심으로 기도했다. 어머니의 고통만은 멈추어 달라고. 그 순간만큼은 어떤 신에게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고 눈을 뜨니 내 기도와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 대조적이었다. 어머니는 시커먼 얼굴을 하고 여전히 눈과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와 같아야 할 그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마치 오늘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나와 정을 떼시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 같았다.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옆집에 도착했을 때 밥을 차려주셨지만 한 숟갈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멀리서 호동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화야 경화야. 그 부름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했다. 죽음은 원래 그렇게 다가온다. 멀리서부터 울리는 작은 소리처럼. 그러나 귀에 닿는 순간 모든 세계를 정지시키는 소리처럼.
방문을 여는 순간 방 안은 모두 흑빛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차원이 다른 연옥 같았다. 시커먼 기운이 어머니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절규의 잔향이 방 안에 맴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부르다 지쳐 돌아가셨다. 얼마나 애타게 부르셨으면 입가에 누룽지처럼 피가 굳어 딱지가 앉아 있었고 눈동자는 열려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입가를 젖은 행주로 닦아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겨드리고 조심스레 눕혀드렸다. 어머니의 죽음은 믿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죽음 앞에서 어린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손길이 어머니에게 닿기만을 바랐다.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가를 살짝 올려드렸다. 비록 아파서 돌아가셨지만 천국에는 웃으며 들어가시라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방 안에 아직 떠나지 않은 어머니의 넋을 느낄 수 있어 허공을 향해 비손을 하고 깊숙이 절을 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져버린 마음은 눈물도 잊는다. 다만 내 기도를 너무 빨리 들어버린 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울음은 뒤늦게 온다. 마음의 지연된 진실처럼.
나는 아침 저녁으로 매일 두 손을 모은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천주교의 모든 기도와 미사 예절에 담긴 비손 때문이었다. 비손은 인간이 절박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모아지는 간절함의 모양이다. 무릎을 꿇는 예절도 좋았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자세다. 교만이 그곳에 틈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득 성체 앞에 무릎을 꿇으면 나는 다시 아홉 살로 돌아간다. 그날의 방, 그날의 피, 그날의 기도, 그리고 마지막 손길. 신 앞에서 인간은 늘 어린아이가 된다. 나도 그렇다.
나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한겹 한겹 더세인트를 만들고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편히 살라고 조언한다. 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냐고 묻는다. 왜 굳이 힘든 길을 스스로 찾느냐고 물으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내 삶으로 답할 것이다. 간절함이 사라지는 시대에 나는 다시 간절함을 선택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버겁고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두 손을 모으는 삶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길이고 나의 방식이다.
나는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늘 두 손을 모으고 깊이 절을 하며 들어간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것이다. 산에 갈 때도 합장하고 절하면서 제가 산에 듭니다라고 말한 후에 올라간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다. 제가 산에서 돌아갑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내려온다. 자연 앞에서도 인간은 작아지고야 만다. 그 작아짐이 나를 지켜주었다.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두 손을 모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내가 어머니 앞에서 했던 그 비손을 이제는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누고 있다. 어린 나는 두 손을 모아 어머니를 구하려 했지만 어른이 된 나는 두 손을 모아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 내가 기도했던 방식으로 내가 살고 싶은 길을 지금도 이렇게 조금씩 온몸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또 한 번 두 손을 모은다.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어둠 한 조각이라도 덜어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불안과 그늘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사랑을 향해 몸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비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