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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사람들 그 숨은 진실

by 마르치아


살다보면 유독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부러 빛을 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빛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저 묵묵히 살아낼 뿐인데 어느 순간 주변의 어둠이 그들의 얼굴을 통해 흩어지고 그들의 말과 행적과 지난한 생의 흔적들이 조용한 광채로 번져 나간다. 그 빛은 전구의 밝음과도 다르고 햇살의 직진성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구르는 돌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윤기에 가깝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거기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돈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오래 사랑하고 지켜보며 살아왔다.


사람은 본래 빛에서 비롯되었다. 태초의 어둠을 가르는 최초의 숨결. 혼돈이라는 바다 위에 떠오른 미세한 떨림. 그 떨림에서 생명은 시작되었고 생명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빛을 안에 품었다. 그래서 인간이 빛나는 것은 결코 신비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귀속과 기원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빛을 잃었다고 믿는 순간을 겪는다. 스스로에게 어둠이 내려앉는 계절이 분명 찾아온다.


그러나 그 어둠이야말로 빛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운다. 밝음만 본 사람은 빛을 모른다. 그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하지만 어둠 속을 걸어본 사람. 상처를 품고 오래 견뎌본 사람. 그런 사람만이 비로소 빛을 알아본다. 빛의 절대성은 어둠이라는 배경을 가질 때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원적인 빛이 어디서 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이는 그것이 신에게서 왔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우주라는 끝없는 침묵에서 왔다고 말한다. 혹은 생명 그 자체가 불씨였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서 왔든지 그 빛은 인간이 살아낸 흔적을 통과하며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색을 띠게 된다. 어떤 이는 잿빛이고 어떤 이는 금빛이며 어떤 이는 깊은 푸른색이다. 빛의 종류만큼 인생도 다르고 인연도 다르다.


상처가 나면 몸은 그 상처를 메우려고 애쓴다. 피부는 스스로를 봉합하고 살가죽은 뻣뻣해졌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려고 싸움을 시작한다. 그 거친 부분을 문지르고 문지르며 시간이라는 손길이 그 위를 반복해서 지나가면 어느 날 그 자리는 전보다 더 환하고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이 난다는 것이 바로 그 윤기다. 그러므로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빛난다. 자신을 돌보고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것과 화해하려고 끝없이 노력한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절대적인 밝음. 그 밝음은 노력 없는 사람이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빛나는 사람들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말이 없고 조용하다. 자신이 빛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하루를 충실히 살아낼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견디고 밤이 오면 조용히 앉아 오늘보다는 조금 나은 내일을 기도하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빛을 품는다. 그들에게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흐른다. 그 온기가 다른 이들의 마음 속 촛불을 건드린다. 그러면 어둠을 혼자 견디던 사람의 가슴에도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난다. 빛은 그렇게 번지고 연결된다.


빛을 알아보는 사람들 역시 지혜롭다. 남의 밝음을 시기하지 않고 그 밝음을 기꺼이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도 결국은 빛나는 존재다. 빛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인연이란 같은 빛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멀리서도 그 사람의 밝음이 나를 부르고 가까이 다가서면 나의 어둠이 흔들리고 함께 서 있으면 서로의 빛이 섞인다.


별도 마찬가지다. 별들은 모두 빛나지만 어떤 별은 다른 별이 반짝일 때 잠시 자신의 밝음을 누르고 조용히 숨을 고른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가만히 발광한다. 사람의 빛도 별과 닮았다. 스스로 빛날 줄 알면서도 누군가의 빛남을 위해 잠시 자신을 낮추는 일. 그 절제와 기다림, 그 조용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형태의 발광이다.


사랑은 이런 방식으로 빛난다.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상대의 어둠을 덜기 위해 자신의 빛을 더 깊게 다스리는 태도. 허세 없이 과시 없이 조용한 밝음으로 다른 사람을 덥히는 마음. 그 마음이 이어지는 방식이 바로 인연이다.


빛나는 사람 곁에는 또 다른 빛나는 사람이 선다. 서로가 서로에게 길이 되어주고 때로는 등불이 되어주며 어느 날은 내가 비추고 어느 날은 내가 비춰지는 자리에서 서로의 빛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은 조금씩 환해지고 그렇게 이어진 빛들은 또 다른 인연을 부른다.


우리는 빛에서 왔고 빛으로 살다가 결국 다시 빛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의 생을 살아내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별이 된다. 어떤 날은 작고 어떤 날은 크게 흔들리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발광하는 존재로 돌아간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우리의 시작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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