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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관광(觀光) 오세요

by 마르치아

제주 이주 10년차가 되어보니 제주는 말 그대로 ‘관광지’라는 말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내가 말하는 관광(觀光)은 우리가 흔히 말해왔던 그 관광이 아니다. 관광은 원래 불가(佛家)에서 쓰이던 말이다. 관(觀)은 관조, 세상을 깊이 바라보고 그 바라봄에서 스스로의 실체를 마주하는 행위다. 광(光)은 그 바라봄 끝에서 깃드는 빛, 내면이 밝아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관광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다. 관(觀)하는 이에게 광(光)이 깃드는 과정, 즉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밝히는 여정’이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관광은 다르다. 맛집을 탐험하고, SNS에 올릴 장소를 찾아다니고, 잠시 비현실을 즐기다 돌아오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말하던 관광이었다. 그러나 관광의 본래 의미는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세상을 깊이 바라보아 자기 마음의 어두운 곳에 스며드는 빛 하나를 발견하는 일. 나는 이것이야말로 관광이라는 말이 가진 가장 깊고도 오래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주에 방문한 지인들에게 묻는다. “제주에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면 대부분 밝게 대답한다. “관광하러 왔어요!” 나는 그 말이 반가워 관광의 어원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정말… 제주에 관광하러 오신 건가요?” 이 질문 하나가 그들의 여행을 바꿔 놓는다. 이 질문은 여행의 목적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방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풍경을 관(觀)의 첫 문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면 그들의 여행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변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제주라는 섬 자체가 관조가 태어나는 땅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자연은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관조를 일으킨다. 바람은 멀리서부터 오는 소리가 아니라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숨결처럼 스친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어딘가 멈춘 듯한 느린 리듬을 가졌다. 오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사람의 내면을 열어젖힌다.




제주에서 걷다 보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먼저 나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는다. 돌담 하나가, 검게 태운 숲길 하나가, 비 온 뒤 흐르는 물길 하나가 내 안의 오래된 문장을 먼저 불러낸다.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갈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풍경이 오히려 나를 멈추게 하고 그 멈춤 속에서 관(觀)이 시작된다. 그 다음은 자연이 한다. 내가 억지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섬이 조용히 빛을 내어 그 빛이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든다. 광(光)은 그렇게 천천히 피어난다.




그래서 제주는 사람을 가르치는 섬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섬이다. 관조란 억지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섬의 침묵이 조용히 초대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제주에서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무 이유 없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먼저 나를 멈추게 한다.




어느 해 겨울, 전날까지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뒤였다. 그날만큼은 바람이 완전히 죽고 산 전체가 숨을 들이마신 채 긴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정적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고요 앞에서야 내 안의 시끄러움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다. 관조는 그 순간 시작되었다.



또 한 번은 비 온 다음날의 바다였다. 바다는 잿빛이고 파도는 치지 않았고 바다는 움직이는데 어딘가 전부가 멈춘 듯했다. 그 잿빛 안에서 문득 이런 마음이 올라왔다. “나도 이렇게 멈추고 싶다.” 그 한 문장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진실이었다. 그 순간 나는 멈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배웠다.



그리고 어느 봄날, 오래 마른 감귤나무 가지에서 연둣빛 새순 하나가 돋아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새순 하나가 내 피로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살아내느라 잊었던 마음의 무게가 그 작은 빛 앞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관조는 거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생명이 나를 멈추게 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그때 나는 배웠다.



제주는 사람을 억지로 밝히지 않는다. 섬은 그저 침묵한다. 말을 하지 않지만 내 안의 말과 감정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제주는 푸르고, 그러나 눈이 시릴 만큼 푸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쪽까지 스며드는 푸름이다. 바람은 몸을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생각을 흔드는 바람이고 돌들은 나를 떠밀지 않지만 여기 서 있으라고 조용히 자리를 마련한다. 그래서 제주는 사람에게 “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 있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사람을 바꾼다. 그 말이 관광의 빛을 사람 안에 품어 넣는다.




관광(觀光)은 보는 행위로 나를 밝히는 여정이다. 그 여정은 멀리 떠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이 바뀌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제주는 그 시선을 바꾸게 하는 섬이다. 이 섬은 당신에게 묻지 않는다. 당신의 슬픔을 조사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고요 속에 세워둘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서 작은 빛 하나가 켜진다. 그 빛은 억지로 켜진 것이 아니라 섬이 건네준 광(光)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제발 제주에 관광(觀光)하러 오시라.

구경하러 오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밝히는 여행으로
한 번쯤 제주에 오시라.

제주는 그런 여행을
조용히, 깊게, 그리고 오래 품어주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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