脚光 이후의 삶

by 이 경화


잠시 여성 극단에서 연극을 몇 년 했다. 사실 스무 살 때 삼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극단에 들어갔지만 한 달 만에 포스터를 붙이고 청소만 하다가 이모에게 목덜미를 붙들려 올 수밖에 없었다. 무대는 그때 내 것이 되지 못했고 나는 무대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극단을 나왔다. 그날 이후로 내 안의 용광로에서는 자꾸 마그마가 흘러 나왔다. 식지 않은 열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일상 속에 스며 있었고 말 대신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무대를 잃었다기보다 무대의 공기를 몸이 기억해 버린 상태로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성 극단에서 신입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마주했다. 그 공고는 종이 한 장이었고 문장은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읽기도 전에 이미 발이 멈췄고, 넘길 수 없다는 감각이 먼저 왔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도망쳤던 스무 살의 나와 아직 무대에 오르지 못한 현재의 내가 같은 자리에 겹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증명하고 싶지도,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내 안에 남아 있던 마그마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스무 살 때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손에 준비한 쪽대본 하나 없이 무대에 내던져졌다. 핀 조명이 떨어졌고 객석에는 서너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준비해 온 거 하라는 사인이 떨어졌을 때 막상 준비해 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은 비어 있었고 몸만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쟁 중 폭격으로 젖먹이를 잃은 엄마 연기를 해 보겠다고 말했고, 설명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연기라기보다는 어디선가 오래 묵혀 둔 울음이 몸을 뚫고 나온 것에 가까웠다. 바닥의 차가움, 조명의 열기, 숨이 막히는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는 그 울음 속에서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었다.


울다 지쳐 목이 쉬어버린 젊은 엄마의 역을 그렇게 끝까지 해 냈다. 눈물이 멈춘 뒤에도 몸은 한동안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몇 명만 분장실로 불려 갔다. 큰 말도, 합격이라는 단어도 없이 분장실의 형광등 아래로 이동했다. 그날 나는 그렇게 신입 단원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리딩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신입 단원 생활은 끝나 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 그러나 내 안에서는 계속 무대가 재생되고 있던 시간이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다시 오디션을 보게 되었을 때 내가 떨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준비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리딩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끝나 버린 신입 단원 생활이 내 연극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늦게 도착한 기회 앞에서 사람은 더 떤다.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손끝에 먼저 와 닿는다. 무대에 서자 연출 선생님이 하나의 상황을 던져주었다. 한적한 저수지 닭볶음탕 집, 회사 동료들과 낮 시간에 찾아간 자리, 그 풍경 속에서 갑자기 시골에 계신 엄마가 떠오르고 혼자 밖으로 나가 엄마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라는 설정이었다.


그 상황을 듣는 순간 나는 아홉 살 때 홀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해 냈다. 엄마를 떠올리는 그 순간 먼저 엄마가 내 심장에 덜컥 닿아 있었다. 머리가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설정 속의 엄마는 살아 있었지만 내 안의 엄마는 이미 부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통화는 연결을 전제로 한 안부가 아니라 닿지 않는 사람에게 습관처럼 말을 거는 시간이 되었다. 대사는 몇 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호흡과 눈빛, 그리고 절제된 동선, 몇 마디의 대사가 전부였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장면을 붙들고 있었고 나는 그 침묵을 끝까지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엄마가 돌아가셔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빈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에게 이 장면을 설명하는 설정으로 연기를 마쳤다.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말들이 무대 위에 남았고 설명해야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하루를 붙잡고 있었다. 연기는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오디션을 지켜본 기존 단원들과 연출 선생님은 누구랄 것도 없이 펑펑 울었다. 순식간에 그 자리는 울음바다가 되었고 평가의 형식은 사라졌다. 그 울음 이후 연출 선생님은 내가 배우로서 너무 훌륭한 자질을 타고났다며 감탄해 주셨다. 기술이나 요령이 아니라 삶을 통과시켰다는 말에 가까웠다.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나는 그 오디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내가 주저앉았던 그 바닥을 이해할 수 있을까를 가늠하면서, 내가 버티고 일어나는지를 말없이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일까를 기대하면서 나는 사랑을 시작해 왔다. 사랑이 시작될 때 나는 무대에 서서 오디션을 보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객석에 머물렀다가 상수로 올라왔다가 다시 하수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사랑과의 간격을 유지해 왔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질 것 같았고, 너무 멀어지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디션과 사랑은 즉흥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둘 다 준비한 말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반응에서 무언가가 새어 나온다. 머리는 늦게 도착하고 몸이 먼저 상황을 통과한다. 즉흥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축적된 감각이 순간에 새어 나오는 상태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나는 늘 내가 생각한 나보다 먼저 드러난다. 통제하지 못한 채 서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은 자신이 어디까지 버텨 왔는지를 들키고 만다.


무대에서 각광을 받을 때는 밝음보다 어둠이 먼저 느껴진다. 사방이 잠기듯 어두워진 뒤에야 빛이 떨어지고 그 빛은 나를 비추기보다 나를 드러낸다. 얼굴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손끝의 떨림까지 숨길 수 없게 되며 숨을 쉬는 소리마저 무대 위에 남는다. 그 순간 나는 커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 벗겨진 사람이 된다. 각광은 환호가 아니라 노출에 가깝고 그 빛 아래에서 나는 잠시 허락받은 존재처럼 서 있다.


그러나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삶에는 리허설도 대본도 연출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삶은 더 날것이고 더 즉흥에 가깝고 구조와 방향은 감정에 기대어 있다. 삶은 이해되기보다 통과되어야 하는 것에 가깝고 우리는 늘 알 수 없는 상태로 선택을 건너간다. 즉흥처럼 보였던 순간들은 가장 깊이 쌓인 감정이 방향을 잡은 결과였고 진실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몸을 지난다. 무대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즉흥 속을 걷고 있다. 그 흔들림 속에서 계속 서 있으려는 태도, 아마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감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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