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아도 되었던 날의 의미

아무일도 없던 날에 대하여

by 이 경화

모든 사건에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일상을 나누는 그 순간에도 무심코 누군가에게 쓴 편지에도 언제나 클라이맥스가 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극적인 장면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사소한 지점에서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말을 덜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보내지 않으려다 결국 보내는 한 줄 혹은 끝내 적지 않기로 마음먹은 공백 속에서 클라이맥스는 나타난다. 클라이맥스는 늘 조용하다. 요란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생각이 생각을 밀어내고 마음이 마음을 설득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사건의 정점이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클라이맥스는 늘 큰 사건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클라이맥스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통과해버린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저 그런 날 기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날이었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를 속인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을 하고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삶의 가장 결정적인 지점을 놓친 채 살아간다.

우리는 늘 큰 기쁨을 원하고 인생의 대반전을 일으킬 만한 성과만을 좇으며 산다. 눈에 띄는 변화 단번에 설명 가능한 성공 누구에게나 이해될 만한 서사를 기대한다. 그 결과 이미 지나온 날들 속에 숨어 있던 변화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버린 하루들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넘겨버린 순간들 속에서 정작 삶의 방향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기억하려 한다. 생일이나 기념일 큰 결심이 필요했던 순간들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삶을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우리를 바꾼 순간들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은 날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범한 오후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던 저녁 늘 하던 대화 속에서 문득 방향이 달라진다. 클라이맥스는 사건의 꼭대기가 아니라 인식의 꼭대기다. 무언가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다. 같은 말을 들었는데 오늘은 다르게 들리고 같은 풍경을 보았는데 오늘은 오래 머문다. 변화는 언제나 외부보다 내부에서 먼저 일어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 지점을 오래 바라본다. 무엇이 있었는지를 기록하기보다 왜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 마음이 달라졌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산문은 사건을 서두르지 않는다. 결론을 앞당기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을 천천히 돌며 그 정점이 저절로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종종 클라이맥스를 꾸미려 한다. 의미를 부여하고 문장을 세우고 감정을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대개 실패한다. 진짜 클라이맥스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까지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글은 제자리를 찾는다.




편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안부로 시작하고 날씨를 적고 근황을 나열한다. 그러다 문득 손이 멈춘다. 더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솔직해질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적는 한 문장이 그 편지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덧붙임이 된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많은 일을 겪지만 그중 일부만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것은 대개 선택의 형태로 나타난다.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를 앞에 두고 우리는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은 곧 정점이 된다.

우리는 종종 그런 날들을 실패한 하루처럼 취급한다. 특별한 성취도 없었고 뚜렷한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날이 이미 다른 선택을 향해 몸을 기울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삶은 그렇게 조용히 방향을 바꾼다. 소리 없이 증거 없이 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바뀐다.




철학은 이 멈춤을 오래 붙잡는 일이다. 빨리 해석하지 않고 쉽게 정리하지 않으며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다. 그래서 철학적 산문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클라이맥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점 이후의 태도다. 클라이맥스를 지나온 사람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돌아갈 수 없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아도 더 이상 같지 않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우리는 종종 끝을 원한다. 명확한 결론 분명한 메시지 잘 닫힌 문장을 원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덜 닫힌 상태로 계속된다. 좋은 산문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마침표를 찍되 완전히 닫지 않는다. 독자가 자기 경험을 덧대어 읽을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클라이맥스는 독자를 설득하는 지점이 아니다. 독자가 자기 기억을 꺼내게 되는 지점이다.




모든 사건에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그리고 그 클라이맥스는 늘 우리가 예상한 곳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얼굴로 다가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다만 지나간 뒤에 우리는 알게 된다. 그날 이후로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일은 이 변화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대신 미세하게 달라진 방향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 산문은 삶을 흉내 내지 않는다. 삶을 조용히 따라간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클라이맥스를 통과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글은 그 알아봄의 연습이다. 사소함 속에서 정점을 발견하는 일 평범함 속에서 의미를 포착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연습 끝에 남는 것은 대단한 결론이 아니다. 조금 더 정직해진 시선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 하나가 달라졌다는 감각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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