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놈이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간 지 이십년이 되었다. 그 시간을 셈해 보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기념하지도 않았고 극복의 서사로 꺼내 놓지도 않았다. 그 일은 나의 일부가 되었고 굳이 꺼내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의 조건이 되었다. 이후 나는 열린 삶을 지향하며 살게 되었다. 이것은 더 이상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이력도 아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내 목에 남은 팔 센티미터 남짓한 상처를 본다. 정확히 말하면 상처라기보다는 하나의 문에 가깝다. 닫힌 적 없는 문, 다시 닫을 수 없는 문. 그 문을 통해 나는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고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기쁘게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상처는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냈고, 미루지 않게 되었으며, 망설임 앞에서 오래 머물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위기가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리지 않았어도 나는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영혼의 도약을 경험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가장 자주 붙들고 있는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언제나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위기에 떠밀리지 않고도, 죽음의 그림자를 등 뒤에 두지 않고도 욕망을 초월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내가 과거와의 단절과 탈피를 가장 선명하게 경험한 순간은 갑상선 악성 종양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 동의서 보호자란에 스스로 내 이름을 적던 날이다. 보호자의 이름을 묻는 칸 앞에서 나는 잠시 펜을 멈췄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 이름을 적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로소 나 자신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수술실로 향하는 침상 위에서 나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형광등이 박힌 병원 천장이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이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이 나를 가장자리로 밀어냈어. 나는 아무 데도 물러설 곳이 없어.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공간도, 숨을 곳도 없어. 그래서 나는 조롱하듯 죽음의 얼굴을 바라보며 춤을 췄어. 신나게. 한 번도 이렇게 자유롭게 춤을 춘 적이 없어.
그 춤은 몸짓이 아니었다. 결심도 아니었고 용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태도였다. 삶을 향해 몸을 여는 방식이었다. 두려움을 제거한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서는 법이었다. 그 춤사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죽음이 뒷걸음쳤다. 죽음이 뒷걸음치자 갑자기 불꽃이 일면서 어두운 긴 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제는 계속 춤추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사실 지금도 춤추고 있다. 삶이라는 무대가 있는 한 나는 이 춤을 멈출 수 없다. 이 춤은 환희의 몸짓이 아니라 지속의 자세다. 환희는 순간이지만 지속은 매일을 요구한다. 매일 아침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서는 일, 다시 몸을 여는 일, 다시 삶을 선택하는 일.
살다 보면 나는 이따금 원치 않는 경험 속으로 깊숙이 떠밀려 간다. 예상하지 못한 상실, 관계의 균열,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들. 예전의 나는 그 앞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고 설명을 붙이려 했으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모든 경험이 의미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떤 순간은 그저 통과해야 할 장면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춤을 춘다. 흔들리며, 박자를 놓치며, 때로는 음악이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멈추는 순간, 삶은 다시 나를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밀려나기보다 먼저 나아가기로 했다.
이런 특별한 도약을 꿈꾸지 않았더라면 내 춤은 과연 멈추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춤추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춤이 지금처럼 명확한 태도를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절벽 앞에서 배운 춤은 이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리듬이 되었다.
현재라는 무대는 언제나 임시적이다. 영원히 이어지지 않기에 더 선명하다. 나는 이 무대 위에서 가능한 한 몸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상처를 가리지 않고, 두려움을 제거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안은 채 춤을 추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이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춤을 춰야만 한다. 이 무대가 남아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