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이란 숫자에 대해서 골몰히 생각한 날이 있었다. 나는 숫자 중에 유난히 3을 좋아한다. 내 생일을 묻는 사람들에게 삼월 삼짇날 태어났다고 하면 모두들 높은 날에 태어났다고 했다. 삼월 삼짇날은 예로부터 길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처음의 양의 수인 1과 처음의 음의 수인 2가 합쳐진 첫 날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양과 처음의 음이 만나는 날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無知한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을 때의 일종의 불식의 상태에 가까웠다. 에너지와 에너지가 만나 하늘 문이 열린 그 축복의 숫자 3, 그 숫자가 두 번이나 겹친 날이니 그 얼마나 큰 날이었던가. 그래서 삼월 삼짇날 태어난 나는 다른 이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미혹 속에 자라났다.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의문의 숫자 3. 어쩌면 나는 그 3이란 숫자를 밀어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게 싫었고,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더더욱 밀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나는 내 운명에 대해 아주 깊게 생각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것은 내 운명의 틀에 나의 이슈를 객관화시키고 합리화시키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지금의 현재의 나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구원론에 가깝다. 이유를 찾기보다 살아 있는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자주 그 질문 앞에 오래 머문다.
사람이 셋이 길을 가면 그중 한 명은 꼭 선생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내가 어떤 이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바라보는 제3의 인물을 가정할 때, 그 대화는 더 심오한 부분까지 내려갈 수 있었고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세밀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나와 타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질 때, 의외로 해답을 얻거나 혹은 더 깊은 물음으로 내려가는 경험을 수차례 하게 된다.
그 한 걸음 떨어진 관점은 어떨 때는 나를 살게 했고, 나를 의심하지 않게 했으며, 또 스승이 되어 나를 가르치는 구조가 되었다. 나는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둘보다는 셋이 좋다. 둘만 마주 앉으면 관계는 종종 극단으로 기운다. 한쪽이 너무 차갑거나 다른 쪽이 지나치게 과열되면 호흡은 가빠지고, 말은 많아지며, 밀도마저 높아진다. 깊어졌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숨 쉴 틈이 사라진 상태다. 관계가 답답해지는 순간은 언제나 그때였다.
셋이 있을 때 관계는 느슨해진다. 느슨해진다는 말은 얕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판단이 한 박자 늦춰지고, 결론이 서두르지 않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심판관이 아니라, 이쪽도 저쪽도 수용하는 또 하나의 시선이 관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말은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흐른다. 질문은 공격이 아니라 머무름이 되고, 대화는 승패가 아니라 여정을 갖게 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너무 가까이 붙들면 감정은 왜곡되고, 이해는 쉽게 폭력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는 방식을 배워 왔다. 삶을 장면처럼 바라보고, 감정을 대상처럼 놓고, 생각을 내려다보는 일. 그 거리는 냉정함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스스로를 부수지 않기 위해 마련한 사유의 공간이었다.
나에게 3인칭은 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심문하지 않기 위한 거리였고, 나를 단정하지 않기 위한 유예였다. 삶이 감당하기 어려워질수록 나는 자주 셋째 자리를 만들었다. 말하는 나와 듣는 타인 사이에 판단하지 않는 시선을 하나 더 놓았다. 그 자리는 중립이 아니라 균형이었고, 무심함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숫자 3을 좋아한 이유는 특별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둘 사이의 팽팽함에 휘말리지 않고, 나 자신을 함부로 재판에 세우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때로는 나를 주어로 두지 않고, 나를 목적어로 삼지 않으며, 나를 하나의 문장처럼 관찰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니 삶에서 내가 그토록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때로는 1인칭보다 3인칭으로 인생을 살아도 좋다.
그 거리는 나를 멀어지게 하지 않고, 끝내 나에게로 돌아오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