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을 끓이면서

by 이 경화


곰탕만 끓이면 목이 메어온다. 우리는 처음부터 가난했던 집은 아니었다. 넉넉하게 살았고, 보호받고 있었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래서 우리가 거의 굶게 된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삶이 갑자기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던 날도 있었고, 있어도 손을 뻗지 못하던 날들이 더 많았다. 배고픔은 울음으로 나오지 못하고 몸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아홉 살의 나는 그렇게, 배가 고픈 채로 하루를 넘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아홉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가족 중 누가 아프다거나 무슨 큰 문제가 없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당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이모는 엄마와 나의 보호자이자 가장이었다. 새벽에 전라도에서 올라온 산모가 위독했고, 큰 병원으로 갔어야 했지만 보호자가 너무 매달려 이모는 수술을 했다. 결국 산모는 세상을 떠났고, 이모는 그런 이유로 어두운 곳에 가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막내딸로 자라 늘 보호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닥친 현실은 엄마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모의 재판을 보고 돌아오던 날, 엄마는 대문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고 그 일로 중풍이 되었다. 몸의 반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막막했다.


엄마는 증세가 더 악화되어 구멍이란 구멍에서 매일 피를 쏟아내셨다. 나는 매일 엄마의 피를 수습해야 했다. 행주를 빨고 헹구고 다시 빨아, 엄마의 피를 닦아냈다. 물은 붉어졌다가 옅어지고 다시 붉어졌다. 배가 고픈지조차 잊은 채,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나이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침묵이 집 안에 쌓여 있었다.


엄마는 이모가 어두운 곳에서 나오는 날 곰탕을 끓여 드리겠다고 했다. 망사 시장바구니에 사골을 넣어 부엌 벽에 매달아 두셨다. 그 사골은 오래 그 자리에 매달린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부엌 한켠에 매달린 사골에선 푸릇푸릇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곰팡이는 조금씩 자랐다. 그러고도 몇달이나 사골은 그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사골은 매일 부엌에서 서성이던 나를 내려다보았고, 엄마는 그것을 치우지 못하게 울면서 말렸다. 그 사골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곰탕을 끓일 때마다 냄비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이 된다. 끓는 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때의 부엌과 그 아래 사골을 올려다보며 서 있던 아이를 다시 바라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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