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계란찜

by 이 경화


우리 동네는 좀 높았다. 금호동 금호 극장 뒷편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동네였다. 그래서 시야는 늘 탁 트이게 열려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 건너편 동네에 꽃잔치가 벌어졌다. 목련이 흩날리고 여름이 오면 짙푸른 녹음과 새소리가 번졌으며 가을이 오면 온 동네가 붉은 단풍으로 물들었다. 겨울이 오면 하얀 설경이 그 모든 시간을 덮었다.


어느 봄날 이었다. 꽃이 피면 나는 창가에 매달려 엄마에게서 꽃이 피는 순서를 배웠고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싱긋, 싱긋 미소를 짓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가르치실 때 언제나 말을 아끼셨고 엄마가 아무리 서툰 설명을 하셔도 우리 대화에 끼지 않으셨다.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할아버지는 엄마를 부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셨는데 아마도 내가 배우고 있던 어떤 부분은 할아버지에게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해 보였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해져야 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았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눈빛과 할아버지의 낮은 음성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의 언어로 소통했고 나는 그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았는데 그것이 두 분께 배운 질서였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끼리 하는 대화에는 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신문을 펴고 손톱과 발톱을 자르고 계셨고 나는 세 살 때 한글을 깨쳐 신문을 보다가 아는 글자가 나오면 박수를 치고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할아버지께 응석을 부렸다. 할아버지는 발톱을 자르시다 말고 껄껄 웃으시며 우리 경화가 이렇게 어려운 글자도 읽을 줄 안다며 엄마에게 저녁에 맛있는 반찬을 해 주라고 하셨고 칭찬은 거실 천장에 날아다녔으며 칭찬을 받은 엄마는 나에게 찡긋 윙크를 해 주었다. 그날 저녁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꽉 찬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손톱과 발톱을 다 깎으신 할아버지는 신문의 모퉁이를 하나씩 접어 가셨지만 나는 아는 글자를 다 읽지 않았다며 접힌 신문을 다시 펴느라 진땀을 흘렸고 어른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이렇게 어긋나 있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는 치즈를 얹은 달걀찜이 올라왔고 너무 뜨거워서 할아버지는 그릇에 덜어 후후 불어 주셨으며 엄마는 내 셔츠를 걷어 주었다.


다른 반찬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후후 불어 주던 그 치즈 달걀찜과 밥 위에 조금씩 올려 주던 엄마의 손길 그리고 가끔 마당에서 메리가 컹컹 짖던 소리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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