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과 석연찮은 소식
할아버지는 연필을 언제나 참 곱게 깎으셨다. 대패질을 하듯 조심스럽게, 한 껍질 한 껍질 얇게 나무를 벗기며 연필 끝에 생명을 입히셨다. 내가 글씨를 서툴게 흘리던 나이였지만, 그 손끝에서 나는 사각거림은 작은 경전처럼 내 귀에 스며들었다. 사각사각, 마치 시간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연필을 받았다. 그 연필로 세상을 배웠다. 글자를 익혔고 문장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글이라는 세계 안에서 나를 살았다. 가르쳐주는 이는 없었다. 연필 끝에서 나오는 조용한 대화 속에서 나는 어느새 글이 되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수없이 많은 연필을 깎았다. 종이를 채웠다. 어떤 날은 너무 무딘 연필로 마음을 눌러 적었고, 어떤 날은 너무 예민한 연필로 스스로를 찌르기도 했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글은 내 손이 삶을 붙잡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문단은 연필이 예쁘게 깎였는지보다, 어디서 누가 깎았는지를 묻는다. 나는 내 손으로 정성껏 깎았는데, 그건 왜 이렇게 쉽게 무시되는 걸까. 어떤 평가보다 무례한 침묵이 더 날카롭게 베어왔다.
며칠 전, 등단 탈락 소식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문턱 아래 조용히 주저앉았다. 나는 그저 쓰고 싶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승인 한 줄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쌓아온 시간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겨울밤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무릎에 앉힌 나를 위해 연필을 깎아주시던 그 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사각거림이 귀에 맴돌았다.
그 손길을 기억하니 알겠더라. 글은 누구에게 선택받는 일이 아니라, 자기 연필을 자기 손으로 끝까지 깎아내는 일이라는 걸.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쓰는 사람은 쓴다. 그것이 쓰는 사람의 숙명이고, 위로이자 기도다.
나는 아직 연필을 쥐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다시 깎는다.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 한 줄을 내 손으로 쓰기 위해.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 손등에 밴 흙내음, 무릎에 얹힌 손의 무게가 나에겐 한 권의 책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조용한 순간이 오면 그 책장을 다시 펼친다.
글이란 결국 그런 거다. 누군가를 위한 편지이거나, 지나온 시간을 위한 기록이거나, 혹은 다가올 날들을 위한 서약. 할아버지가 깎아주신 연필로 시작된 나의 글쓰기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문단의 기준 안에서 나는 아직 미달일지 몰라도, 나만의 시간 안에서 나는 분명히 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글을 고쳐 쓰고 다시 읽고, 때론 구겨버렸다가 다시 펼치며 나는 계속 내 문장을 살리고 있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내 문장의 작은 흔적 하나가 새겨질 거라는 것을. 그것을 믿으며 오늘도 나는 연필을 든다.
그 누구도 깎아주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깎는다. 부러져버린 연필심을 보며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깎고 또 깎으며 살아간다. 글은 내 삶의 모양이고, 연필은 그 삶의 도구다.
언젠가 내가 깎은 이 연필 끝에서, 누군가의 울음을 닦아주는 문장이 나올 수 있기를. 그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이미 쓰고 있으니까. 그 사실이 오늘의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연필을 쥐고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고요 속에서 내가 써야 할 이야기를 묵묵히 깎아내고 있다. 그것이 나의 등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