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양식 육개장

얘야 육개장은 땀으로 끓여낸 음식이란다

by 마르치아



여름이면 부엌은 엿새 전부터 더워졌다.

엄마는 장에서 직접 사온 무를 큼직하게 썰어 광목 보자기에 싸서 깍두기를 담그셨다.

대파는 마루 위 신문지에 가지런히 펼쳐 햇볕에 말렸고, 소고기는 양지머리를 정육점에서 사와 핏물을 빼려 양푼에 담가두었다.


핏물은 몇 번이나 갈아야 했고, 그사이 무는 소금을 머금어 숨을 죽였으며, 대파엔 볕과 습기의 냄새가 섞여 내려앉았다.

엄마의 손등엔 말없이 맺힌 땀이 투명하게 반짝였고, 나는 마루에 앉아 그 모든 준비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연탄불 위 알루미늄 냄비에 물을 올리면 곧 부엌은 김으로 가득 찼다.

수증기는 식탁보 위 달력을 뿌옇게 만들었고, 냄비 속에서는 하얀 거품이 조용히 부풀었다.

엄마는 나무 국자로 그 거품을 걷어냈고, 조용한 손놀림 사이사이로 김이 흐물흐물 피어올랐다.


땀이 이마에서 목선으로 흘렀고, 나는 엄마의 손과 국자와 눈빛을 따라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삶아낸 고기는 싸리나무 도마 위에서 길게 찢어졌고, 그 사이로 김이 남아 있었다.

숙주와 고사리도 양은 소쿠리에 담겨 삶아졌다가 찬물에 헹궈지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짜여졌다.

그 길이를 맞추는 엄마의 손놀림은 오래된 예불 같았고, 모든 재료는 함지박에 따로 담겼다.


그 속에는 저마다 다른 온기가 머물렀다.


작은 무쇠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고춧가루를 넣자 “지익” 소리가 퍼지며 부엌 공기를 붉게 물들였다.

불 위에서 고춧기름이 번지며 진한 향이 퍼졌고, 엄마는 그 기름을 국물 위에 붓는 순간 숨을 들이마신 듯 국물이 휘청였다.


붉은빛이 퍼져 깊게 가라앉았고, 나는 그걸 보며 괜히 마음 한 귀퉁이가 따뜻해졌다.


엄마는 국을 한 숟갈 떠 오래도록 입에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짧은 끄덕임 속엔 여름과 부엌과 기억이 함께 담겼고, 무언가 끝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몫은 따로였다.

맑은 육수에 고기만 넣고, 고춧가루 없이 후춧가루만 살짝 뿌려 따로 끓이셨다.

그 국을 낡은 양은 대접에 담아 내 앞에 놓으며 엄마는 말했다.

“경화야, 뜨거우니까 불어서 먹어야 해.”


그 말엔 국과 함께 익은 시간이 담겨 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한 숟갈 떠 그 온기를 삼켰다.


국물마다 고기 삶은 물의 단맛이 배어 있었고, 그 속엔 말없는 손길과 기다림과 어떤 그리움이 있었다. 그건 땀으로 끓인 국이었고, 시간을 고아낸 국이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아도 마음을 덥혀주는 맛이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여름마다 육개장을 끓인다.

엄마처럼 양지머리를 사고, 무를 크게 썰어 깍두기를 담그고, 숙주와 고사리를 삶고,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아 큰 냄비에 붓는다.


엄마의 손을 흉내 내 보지만 늘 그 맛엔 닿지 않는다.

간은 들쭉날쭉하고, 고기는 너무 익거나 덜 익는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왜 이리 더운 날에 굳이 이런 국을 끓이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밥을 말아 조용히 그릇을 내어준다.


그러면 누군가는 국물 한 숟갈 떠먹고 조용히 말한다.

“이거, 엄마 맛이 나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숙인다.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나는 다시 그 여름의 부엌으로 돌아간다. 엄마의 손과 무와 고기와 그날의 뜨거움이 국물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순간, 국물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시간의 향이 된다. 잊힌 말들과 닳아진 기억들이 그 속에 녹아 있고, 나는 다시 그 조용한 사랑 속에 앉아 있는 것이다.


사라졌지만 지워지지 않은 온기.

그것이 내 삶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지키는 냄비 하나의 기억이 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