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생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맛을 배운 건, 아직 말을 트기 전 아기일 때였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성스럽게 내 이유식을 준비하셨다. 쌀 미음을 고르고, 한 알 한 알 작은 손으로 야채를 다지고, 계절에 맞는 재료를 엄선해 첫 숟가락을 내 입에 넣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였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자주 이야기해주곤 했다. “네가 처음 이유식을 맛봤을 때 할아버지는 늘 네 얼굴을 지켜보며 그 작은 표정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쏟으셨단다.” 할아버지는 첫 음식의 경험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세상을 고르고, 사람을 만나고, 취향을 가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늘 강조하셨다.
아기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쌀의 담백함, 당근의 단맛, 호박의 고운 색, 모든 재료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세상 그 자체였다. 할아버지는 내게 “경화야,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만드는 거란다. 좋은 음식을 먼저 맛보면 마음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자라는 거지”라고 하셨다 한다. 그렇게 나의 첫 음식은 사람의 손길과 마음, 계절의 빛깔, 가족의 사랑이 담긴 작은 우주였다. 내 입 안에 처음 들어온 그 순한 맛이 내 인생의 많은 선택과 취향을 조용히 이끌어 주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서 밥상에 새로 올라오는 반찬이 있으면 할아버지는 결코 억지로 ‘이거 먹어봐라’ 하고 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먼저 젓가락을 들어 그 낯선 반찬을 집어보는지 조용히 나를 바라보시곤 했다. 어떤 날은 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건 무슨 맛이야?” 하고 묻기라도 하면,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경화야, 반찬은 궁금해질 때 스스로 먹어봐야 진짜 네 취향이 생기는 거란다. 억지로 먹으면 맛도 마음도 남지 않아”라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내가 밥상 위의 새로운 세계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스스로 탐험하도록 곁에서 다만 지켜봐 주셨다. 어릴 적 그 느긋하고 너그러운 시선 덕분에 나는 세상 모든 맛에 두려움 없이 손 내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밥상에 처음 올라온 가지무침을 내가 망설임 없이 집어 먹었을 때, 할아버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미야, 우리 경화가 오늘은 이 가지무침을 아주 잘 먹는구나. 꼭 날 닮았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시며 잔잔히 미소를 지으셨다. 엄마도 흐뭇하게 웃었고, 나 역시 그때 ‘누군가의 기쁨이 이렇게 밥상 위에서 피어나는 거구나’ 하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 작은 순간들, 처음 맛본 음식 한 점에 온 집안이 기쁨으로 물드는 풍경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따스하게 적신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때, 상대가 가리는 음식이 있으면 괜히 미안해지고, 밥상머리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문득 내 어린 시절 밥상에서 할아버지가 보여주셨던 너그러운 기다림과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던 그 따뜻한 시선을 떠올린다.
억지로 권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봐 주는 마음. 스스로 궁금해지고, 천천히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지켜봐 주던 그 여유. 아마 나는, 그 어릴 적 밥상에서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가장 다정한 방법을 이미 배워온 것 같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인자함을 떠올린다. 할아버지처럼 상대에게 음식을 억지로 권하지 않고, 다정하게 타이르며 “이건 정말 부드럽고 고소해. 혹시 궁금하다면 한 번 맛만 봐볼래?” 하고 천천히 권해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이들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왜 여태 먹지 않았는지 놀라워하며 미소 짓는다.
아마도 밥상머리에서 배운 이 작은 기다림과 다정한 권유, 그리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를 조금 더 따뜻하게 이어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음식에 대한 첫 경험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때가 많다. 어릴 적 한 번의 첫 맛, 따뜻한 밥상머리에서의 작은 선택, 그리고 누군가의 다정한 기다림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취향을 만들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키우고, 사람을 만나는 마음의 문을 조용히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앞에 마주 앉은 누군가가 새로운 맛을 만나는 그 순간에도 내가 받은 그 다정한 시선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