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간짜장 철학

고마움은 그렇게 흐르는 거란다.

by 마르치아




할아버지는 내가 자장면을 유독 좋아하는 걸 아시고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나를 데리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셨다. 그 약속은 마치 우리만의 의식 같았다.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바나나와 계절 과일을 고르고, 명동 거리도 잠시 거닐며 여유를 즐기시던 그날의 풍경은,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내가 먹는 과일만큼은 언제나 최고만을 고집하셨다. 여름 뙤약볕 속에서도,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도, 당신은 나를 품에 안고 과일 도매상으로 향했다. 손에 쥔 바구니엔 선별된 반듯한 과일들만 담겼다. 그 덕에 나는 이유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나나를 처음 맛보게 되었고,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곧 할아버지의 사랑이 되었다.



동네 어귀에 다다를 즈음이면 할아버지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조용히 묻곤 하셨다. “경화야, 배 안 고프니?” 알고 보면, 중국음식을 드시고 싶은 당신의 작은 변명이었다. 그러나 엄마와 나는 그런 귀여운 속내를 애써 모른 척했고, 그저 미소 지으며 그 길을 따라나섰다. 그 순간은 서로를 향한 다정한 공모였고, 우리 셋만의 은근한 행복이었다.

할아버지는 미식가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 외식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삶 속의 일상이었다. 자장면 한 그릇조차도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장면이 어느 영화보다도 호사스럽고 빛나는 기억이다.




우리가 자주 찾던 그 수타면집은 화교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면발을 치는 경쾌한 소리와 반죽의 춤사위가 펼쳐지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늘 나를 번쩍 안아 무등을 태우셨다. “경화야, 저기 봐라. 저게 진짜 면이란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나는 생생하게 펼쳐진 그 면의 예술을 온 눈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그 자장면집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누가 감히 할아버지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그렇게 자랄 수 있었을까. 사장님도, 주방 아줌마도, 나를 보며 밝은 얼굴로 “경화 양, 또 왔네요!” 하고 반겨주었다. 나는 그들의 환한 인사에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장면이 식탁에 오르면, 우리는 늘 간짜장을 시켰다. 양념이 잘게 썰린 유니짜장은 할아버지의 손길을 거쳐 정성껏 비벼지고, 내 앞의 작은 그릇에 덜어졌다. 그때면 사장님은 내 전용 포크를 조용히 가져다주셨다. 자장면의 진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나는 포크를 들고 눈을 반짝이며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짜장의 단맛과 면의 찰기가 입안에서 어우러지던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아이였다. 입가에 범벅이 된 짜장을 닦을 겨를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던 나를 옆 테이블의 손님이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쩜 아가가 저렇게 맛나게 먹을 수 있지?” 그 말에 할아버지는 너그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손녀가 좋아해서 자주 와요. 맛있게 드세요.”




그 말 한마디가 식당 안에 따뜻한 공기를 불러왔고, 모두가 조금 더 너그러워진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자장면보다 더 깊은 사랑을 씹어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잠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셨다. 정갈하게 접힌 지폐 몇 장. 주방장에게 건네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더 특별히 만들어주셨나 봐요. 우리 손녀가 아주 잘 먹었어요. 이거 얼마 안 되지만 퇴근하고 맥주라도 한 잔 하세요.” 나는 그 장면이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웠고, 그 조용한 배려가 사람을 향한 진정한 예의란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식당을 나서기 전 주방 쪽으로 향해 작게 인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뜨거운 불을 다루며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건네는 일. 그것이야말로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가장 다정한 가르침이다.




오늘도 식당을 나서며 나는 조용히 한 걸음 멈춘다. 익숙한 듯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려, 수고한 손길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그 인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안에서 고요히 이어져온 다정함의 언어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작은 동작이지만, 그 속엔 내 삶을 이끄는 따뜻한 철학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뜨거운 불 앞에 선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는 일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사소한 예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한 그릇의 음식은 손끝의 기술만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단순히 요리를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다. 내가 전하는 감사는 그런 순간들을 향한 인식과 존중이며, 세상에 작게 던지는 다정한 울림이다.



할아버지는 그러한 마음을 일찍이 내게 심어주셨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 그것은 거창한 말이나 큰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수고를 알아보고 조용히 응답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인사를 통해 삶을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세심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바쁘고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의 노동에 눈길을 보내고, 그 순간의 온기에 나의 다정함을 보태는 일. 그것이 할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오래된 예의이고, 내가 지켜나가야 할 삶의 태도다.

오늘도 나는 식당을 나서며, 그 오래된 가르침을 조용히 실천한다. 내 안의 다정함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가며, 누군가의 하루에 은은한 온기를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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