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의 추억
여름이 오면 우리는 어김없이 여주 큰이모네로 놀러 갔다.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력이 좋다는 걸 아시고는, 어린 시절엔 꼭 시골에서의 추억이 있어야 한다며 여름만 되면 여장을 꾸리셨다. 사실 큰이모와 작은이모가 친정집에 올 때마다, 할아버지가 나만 유난히 예뻐하시는 모습에 이모들은 몰래 눈물을 훔치고 돌아가곤 했고, 그때마다 할아버지 마음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문득 깨닫는다. 딸들과 사위, 그리고 외손자 외손녀까지 모두의 사랑을 나누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서툴렀던 할아버지의 마음. 그 넉넉하지 못한 표현과 조금은 어색한 다정함이 오히려 가족들 마음 한구석을 더 오래도록 뜨겁게 만들었다는 걸.
이모네 가기 며칠 전이면 할아버지는 명동에 나가 이모부의 여름 셔츠를 맞추시고, 동대문 시장에서 이모 옷이며 오빠, 언니들 옷까지 여러 벌 사 오셨다. 이모는 매번 친정에 올 때마다 나름대로 예쁘게 차려입는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친정에 올 때는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아이들도 잘 차려입고 와야 한다”고 꼭 퉁박을 놓으셨다. 이모가 오면 할아버지는 매번 나만 끼고 돌았다. 내가 흘린 건 다 주워주시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이 조금만 지저분해도 할아버지는 상에 수저를 놓으며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그 시절 나는 몰랐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때로는 차별처럼, 때로는 고집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것이 가족을 향한 서툰 애정이었다는 걸. 이모는 마음 한쪽에 서운함이 가득했겠지만, 나는 그저 사랑받는 아이의 특권처럼 그 시간들을 누렸다. 가족이란, 때로는 서로를 오해하고 서투른 마음을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한여름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웃고 떠들던 그 장면으로 모두가 위로받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항상 이모의 가방에 돈뭉치를 몰래 넣어두셨다. 나는 그 장면을 꼭 한 번쯤은 들키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새벽녘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노려 이모의 가방을 열고 조심스레 두툼한 봉투를 집어넣으셨다. 나는 방문 틈 사이로 그 모습을 훔쳐보며, 할아버지가 이모에게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사랑을 그 묵직한 봉투 하나에 담아 전하려 했다는 걸 어른이 되어서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십이 넘은 지금에야 사랑을 안다. 사랑은 다정한 여러 마디의 말보다 진심 어린 투박한 행동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사촌들을 앉혀놓고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우리 경화는 애비가 없잖니. 너희들은 모두 애비가 있고.”
이러시며 나에 대한 독점적인 사랑을 대변하셨다.
사실 나는 그때 “애비가 없고”란 말에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 안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그렇게 투박했지만 하나하나 세심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이모네 가는 날은 동네분들 선물까지 차에 실려 있었다. 사실 차가 가득하게 선물이 실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 많은 분이셨다. 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내가 가는 날에는 이모네 동네분들이 모두 잔치라도 벌일 듯이 음식을 많이 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우리 큰딸이 이 마을에서 대우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선물들을 준비해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 먹었던 음식 중에 “장국수”가 있다. 사실 독자들에게 장국수를 이야기하기 위해 서두가 길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철엽을 해서 잡은 민물 생선으로 고추장과 마늘, 파 그리고 호박과 깻잎만 넣고 매운탕을 끓이다가 여기에 칼국수를 밀어넣어 끓인 음식이었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면 장국수 끓이는 냄새가 거기까지 났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이야, 벌써 오늘 무슨 음식 했는지 다 알겠다. 우리 경화도 이 냄새 맡아봐라.”
마당에서는 장국수가 끓고 있었고, 이모는 달려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 오셨어요. 오시기에 힘드시지는 않으셨어요?”
하고 할아버지를 제일 먼저 반기며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도 눈물이 글썽하시면서 이모를 안아주시고
“우리 큰딸이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애비는 안 힘들었다” 하셨다.
아이들은 벌써 차를 둘러싸고 차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는 이모부가 인사를 드리고
“우리 사위, 고집 센 우리 딸하고 살기 녹록치 않지?”
하시며 사위 편을 들어주셨다. 이모부는 환하게 웃기만 하셨다.
사실 이모는 일본까지 가서 유학을 한 신세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6.25가 터지고 마을에서 청년들을 붙잡아 전쟁통에 내보낸다는 말을 듣고 이모부와 사흘 만나고 결혼을 감행하셨다. 결혼을 하면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모는 자신의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수저만 있는 이모부에게 시집을 오신 분이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고집 센 딸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이모는 단 한 번도 이모부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할아버지 눈에는 아까운 큰딸을 정말 없는 청년에게 빼앗긴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큰딸을 볼 때마다 퉁박을 주시고, 친정에 올 때 제발 잘 입고 오라는 당부도 그 아쉬움이 다 들어 있었으리라.
장칼국수 냄새가 온 동네를 감돌면, 나는 이 냄새야말로 공동체가 어떤 이를 맞이하는 향기구나 생각한다.
그때 매미소리, 마을 사람들의 환호소리, 아이들 깔깔 웃는 소리, 할아버지의 반가움에 젖어든 눈, 이모와 이모부의 글썽거리는 눈.
이 모든 정서가 장칼국수 한 그릇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