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은 흔히 빛의 반대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한 문장으로 어두움을 정의하기에는 마음이 자꾸 멈칫한다. 어두움 속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모든 시간을 부정하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두움 앞에서 쉽게 단언하지 못한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다.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몸처럼 공존한다. 인간의 본성 또한 선과 악을 함께 품은 채 태어난다. 다만 삶이라는 환경 속에서 그 성질이 다른 얼굴로 반응했을 뿐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이라는 결말을 부여받는다. 인간은 결국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데 우리는 그 확실성을 애써 잊은 채 살아간다. 인간의 두려움은 대개 죽음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죽음을 멀리할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려움은 형태를 잃는다.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라짐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일이다.
그래서 죽음과 어두움은 닮아 있다. 어두움을 끝까지 밀어내면 그것은 공포가 되지만 어두움 속에 잠시 머무를 수 있다면 그 안에는 결이 다른 침묵과 배움이 있다. 어두움은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경험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흑역사라 불리는 시간들 실패와 좌절 악연과 절망의 날들 우리는 그 어두운 시간 속에서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용기를 붙들고 하루를 넘긴다. 버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해낸다.
어두움은 우리의 모자람을 들추어내고 거짓 희망과 가짜 인연을 가려낸다. 가장 쓰라린 순간에 가장 분명한 얼굴들이 남는다. 우리가 혐오해 온 인생의 어두움은 그렇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어두움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한다. 그래야 한다. 시련과 고통을 쉽게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픔을 통과한 삶만이 다른 삶 앞에서 조용해질 수 있다.
선연과 악연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은 분명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높아지면 낮아지고 채워지면 비워지며 밝음은 어두움으로 기울고 없음은 다시 있음으로 돌아온다. 삶은 늘 이동하며 고정된 얼굴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쁜 일이 찾아오고 고통이 반복되어도 우리는 어두움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등불로 삼아야 한다. 인생의 등불이 얼마나 오래 타오르는지는 우리가 어두움을 어떻게 대했는지 어두움을 얼마나 존중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등불로 자신의 길을 비추고 때로는 타인의 밤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조용한 책임이며 살아 있다는 증거 같은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