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것들은 대개 사랑이라고 불렸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늘 온도를 먼저 떠올린다. 얼마나 뜨거웠는지, 얼마나 빨리 타올랐는지, 얼마나 강렬하게 흔들렸는지. 그 온도가 높을수록 사랑은 진짜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살아보니 온도는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이 지나간 흔적에 가까웠다. 불은 언제든 붙을 수 있었고, 그 불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태웠다. 뜨거워졌는데 식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열정을 활화산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터지고 넘치고 눈에 띄게 타올라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살아보면 그 식지 못함이 얼마나 사람을 오래 태우는지도 알게 된다.
비로소 재가 되어봐야 그 뜨거운 열정이라는 것이 의미부터 잘못 알고 배워 왔던 것은 아닌지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누가 밀어 넣은 것도 아닌데 불나방처럼 사랑을 하고 식어버린 재처럼 후회를 한다. 그러나 열정은 사랑의 다른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타고 남은 약간의 꺼지지 않았던 은은한 불씨였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끝났다고 말한 뒤에 오히려 내 마음 한켠을 데웠다. 사라졌기 때문에 더 선명해진 온기처럼, 손에 쥐지 않아도 없다고 부르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것. 타오르고 식어 버리고를 반복하는 것이 결국 사랑이구나 알 무렵이었다. 사랑은 지속이 아니라 리듬에 가까웠고, 머무름이 아니라 왕복에 가까웠다.
그 기억으로 또 다른 사랑을 했다. 몸에 남은 기억으로 식어도 겁나지 않는 사랑, 태워지지 않는 사랑을 선택했다. 모두를 걸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는 방식으로. 어쩌면 우정일까 사랑일까 그 사이일까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완급을 조절했다. 다가가되 삼키지 않고, 머무르되 소유하지 않는 거리.
그러나 온도 없는 사랑은 애초부터 불가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열을 품고 살아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온도가 사람을 태울 만큼일 필요는 없었다. 서로를 다치지 않을 만큼만 따뜻하고, 서로를 태우지 않을 만큼만 다가서는 그 알맞은 거리. 나는 그런 사랑을 오랫동안 바래왔다.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보존이라는 것을. 사랑은 상대를 향해 가면서도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능력에 가깝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끝까지 불 위에 서 있지 않아도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감각. 철학이 감정을 의심하듯 사랑도 자신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뜨거워야 하는지, 왜 식는 것이 곧 실패처럼 느껴지는지.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끝까지 붙잡는 일보다 잘 내려놓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식어가는 과정을 실패로 부르지 않고, 온도가 변해도 관계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 상태를 사랑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같은 온도로 머물지 않는다. 어느 날은 따뜻하고, 어느 날은 미지근하며, 어느 날은 거의 식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지나 여전히 곁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살아남은 사랑이다. 불이 꺼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심히 다뤄야 할 잔열이 남아 있는 것. 나는 이제 그 잔열을 다시 불로 키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손을 데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온기가 사라질 때까지 함께 시간을 건너가기로 한다.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사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