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곱다라는 의미를 알아가며 살아간다.
엄마는 봄이 되면 나를 데리고 꽃놀이를 자주 가셨다. 그 봄들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는 이제 정확히 세어지지 않는다. 다만 봄이라는 계절이 오면 햇살보다 먼저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봄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언제나 조금 어정쩡한 차림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나는 그때 사내 아인지 계집 아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단발머리에 이대팔 가르마를 타고 흰 셔츠에 골덴 반바지 스타킹을 신겼다. 멜빵을 달고 벨벳 슈트를 입히고 에나멜 구두를 신기면 거울 속의 나는 늘 내가 아닌 사람처럼 서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봄 나들이를 나갔다.
엄마는 늘 예쁜 긴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허리를 살짝 조인 원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셨다. 바람이 불면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한 손으로 눌러 잡고 걷는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엄마의 작은 백 안에는 손수건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엄마용 손수건과 내 가제 손수건. 립스틱과 거울이 달린 지갑 그리고 내가 심심할까 봐 넣어 둔 막대사탕 하나. 그 가방은 크지 않았지만 그날 하루를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엄마는 꽃이 피는 순서를 알려 주셨다. 먼저 피는 꽃과 늦게 피는 꽃 봄바람에 먼저 지는 꽃과 오래 남는 꽃. 나는 그 말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어느 날 목련이 활짝 핀 목련나무 아래에서 엄마는 잠시 멈춰 서셨다. 하얀 꽃잎이 가지마다 가득 매달려 있었다. 엄마는 그 아래에서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얘야 꽃이 참 곱다.
그 말은 크지도 않았고 힘을 주지도 않았다. 혼잣말처럼 낮게 흘러나왔다.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꽃이 예쁘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그날 이후로도 봄은 여러 번 왔고 꽃은 늘 피었다 졌다. 그 문장은 기억 한쪽에 얹힌 채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엄마가 그때 나에게 꽃을 보여 주던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봄은 여전히 오지만 더 이상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가는 일은 없어졌다. 대신 나는 혼자 꽃 앞에 서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꽃을 보고 사진을 찍고 잠시 머물다 돌아섰다. 엊그제도 그런 날이었다. 동백이 한창 피어 있는 길을 걷다가 나는 무심코 한 그루의 동백나무 앞에 멈춰 섰다. 붉은 꽃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꽃잎이 흩어지지 않고 통째로 떨어진 모습이 단정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튀어 나왔다.
아 꽃이 참 곱네요.
말을 하고 나서야 가슴 안쪽이 늦게 울렸다. 그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분명했다. 오래전 목련나무 아래에서 엄마가 했던 말. 그때는 가볍게 지나쳤던 말이 시간을 돌아 다시 내 입에 닿았다. 곱다라는 말은 예쁘다와는 다르다. 예쁘다는 눈이 먼저 반응하는 말이고 곱다는 마음이 한 박자 늦게 닿는 말이다. 반짝임보다 결에 가깝고 화려함보다 오래 바라본 끝에 남는 말이다. 그래서 곱다는 쉽게 입에 오르지 않는다.
곱다라는 한 문장 안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코티분 향기도 있었고 그때 올려다보던 봄 하늘도 큰 목련나무도 함께 있었다. 한 사람의 시간과 계절이 겹겹이 포개진 말이었다. 나는 동백나무 아래서 한참을 눈을 감았다. 꽃을 더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이제 와서야 그 나이를 가늠해 본다. 내가 여섯 살이던 해 엄마는 서른네 살이었다. 지금의 내가 이미 지나온 나이에서 엄마는 꽃 앞에 서 있었다. 그 나이에 꽃을 보고 곱다고 말할 수 있었던 마음이 이제서야 늦게 닿는다.
그 말을 할 수 있으려면 한 계절쯤은 지나와야 하고 한 사람의 나이를 건너와야 한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곱다는 말은 젊은 감탄이 아니다. 오래 살아낸 마음에서 나온다. 어떤 말들은 바로 이해되지 않아도 이렇게 시간 끝에서 다시 돌아와 사람을 조용히 앉힌다.
얘야 꽃이 참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