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한 편과 출간 기획서 한 부
"원고 한 편과 기획서 한 부"
이게 내가 나를 믿는 방식의 출간 제안 이었다. 분명히 나의 문장을 소중히 다뤄줄 출판사가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몇몇의 출판사에 출판 제안서를 넣었다. 반나절만에 긍정적인 메일을 보내는 출판사들이 있었고, 또 어떤 출판사는 오전에 메일을 보냈는데 오후에 편집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또 어떤 신인 작가는 나에게 " 당신이 한강 작가도 아닌데 어딜 원고 한부만 던지냐" 는 무례아닌 무례도 겪었지만, 50부를 내고 출간 제안을 받았던 그로써는 당치도 않을 말이었나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나를 더 믿기로 했고, 눈 내리는 날 저녁 무렵에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계약금이 입금 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작가가 되었다는 기쁨보다 깊은 호흡이 먼저 쉬어졌다. 아. 이제는 내가 문장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무게감이 작가가 되었다는 기쁨보다 먼저 찾아왔다. 그 감각은 나의 초심이 되었고
출판사에 원고 초안을 넘기는데 총 78편으로 5부에 해당하는 비교적 긴 에세이집을 제안 했다.
초고를 넘기고도 이 초보 작가의 불안은 "아 내 글이 어디는 조절되고 또 어디는 덜어 지고 어디는 칼질이 되어 지겠지 하니, 내 허리가 끊어지듯 잠시 통각이 찾아왔다. 1차 답신 메일이 왔다. 그러나 신기하게 내용을 덜어야 한다. 문장의 흐름이 어색하다. 구성이 너무 넘쳐서 이 부분은 파 내었으면 한다는 코멘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 즈음에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내가 내 문장이 이렇게 보이는구나. 출판사의 서평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의 에세이가 괜찮아. 잘 될거야. 앞으로는 걱정마 류의 문장이었다면, 내 책의 문장들은 직접적인 위로가 단 한마디도 없다는 것이다. 허공에 떠도는 위로보다는, 독자들이 직접 삶에서 문득 어떤 날 생각나는 문장으로 쓰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에세이는 힐링 에세이의 궤도를 벗어난 발직한 시도라면 시도이다.
무조건 많이 읽히는 책보다는 침대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펼치는 책, 마음이 불편한데 체한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닌데 설명할 수 없는 잔여물이 남은 날, 조용히 꺼내 드는 책이었으면 했다.
그런 문장 하나 둘만 마음에 남아도 내 책은 이미 충분하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헛된 욕심도 내려놓았다. 위로는 그때 잠시 머무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것은 지속이다. 내 문장들이 무심코 국을 끓이다가, 손님이 와 수저를 가지런히 놓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 정도면, 나는 이미 충분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