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에서 읽어내다

by 이 경화

#수피에서읽어내다

나무의 수피 위로 바람의 영혼이 지나간 흔적이 새겨져 있다. 신은 얼마나 많은 바람의 영혼을 이 길로 지나가게 했기에 이토록 깊고 선명한 상흔을 남긴 것일까.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흔적은 남는다. 인간은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하지만 세계는 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 수만 번의 붓질 끝에 새겨진 이 영혼의 길은 화석처럼 절대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다. 역사는 늘 이렇게 기록된다. 승리의 언어가 아니라 견딤의 표면으로 말이다.


수피는 나무의 얼굴이다. 동시에 가장 바깥의 피부이며 가장 오래된 기록물이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관리하고 수정하고 가공한다. 그러나 나무는 얼굴을 숨기지 않는다. 지나간 계절과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다. 인간 사회는 상처를 실패라 부르고 삭제하려 하지만 자연은 상처를 축적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 태도인지 나는 묻지 않아도 알게 된다.


나는 나무를 안는다. 그러면 바람이 속삭인다.

그 소리는 때로 내 심장을 가르는 칼날이 되고 통증이 피처럼 번지면 나는 나무를 부여잡고 목놓아 운다. 인간 사회에서는 우는 법을 잊어야 어른이 된다. 그러나 나무 앞에서 나는 다시 배운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감각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나무의 삶에서 나는 내 인생을 읽는다.


나무는 경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틴다. 인간은 비교 속에서 정체성을 만든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스스로를 소진한다. 나무는 옆 나무의 높이를 묻지 않는다. 인간 사회는 늘 묻는다. 너는 어디쯤 와 있느냐고.

나는 낯선 마을에 가면 먼저 지세를 살핀다.

물의 흐름을 보고 나무가 어디에 뿌리 내렸는지 확인한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며 자연을 정복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살 수 없는 곳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견디지 못한다.


나무가 살아 있는 곳 그곳은 인간도 살아갈 수 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 그곳에서 인간은 더 많은 규칙과 법과 감시를 만들어야 겨우 버틴다.

문명은 종종 자연을 대신하려 든다. 그러나 자연을 대신한 문명은 늘 과도해진다. 나무는 최소한으로 산다. 인간은 최대한으로 소유하려 한다. 그 차이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인간 사회의 불안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시작된다.


나무를 보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수형을 보고 어떤 이는 뿌리를 본다. 어떤 이는 잎을 보고 어떤 이는 열매를 본다. 나는 수피를 본다. 인간 사회는 열매만 본다. 결과만을 요구한다. 과정은 지루하다 말하고 견딘 시간은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피에는 결과 이전의 시간이 모두 남아 있다. 열매는 계절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수피는 남는다.


숲이 빽빽해도 나무들은 조화롭게 뻗어간다.

다른 나무를 해치지 않으며 넝쿨이 휘감아도 공생을 택한다. 이것이 나무의 질서다. 인간 사회의 질서는 언제나 누군가를 밀어내며 유지된다. 약한 존재는 구조 밖으로 밀려난다. 숲에서는 약한 나무도 햇빛의 틈을 배정받는다. 인간 사회는 빛을 독점한다.

숲에는 중심이 없다. 각자의 자리가 곧 중심이다.


그래서 숲은 오래 지속된다. 인간 사회는 늘 중심을 만들고 권력을 쌓는다. 중심이 무너질 때마다 모두가 함께 흔들린다. 우리는 왜 숲처럼 살지 못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오래 서는 법보다 빨리 오르는 법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그 수피를 더듬는다. 거친 결을 따라 지나온 내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 나무보다 짧은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우러러본다. 인간 사회에서 고개를 든다는 것은 종종 위협으로 읽힌다. 그러나 자연 앞에서 고개를 든다는 것은 배우겠다는 선언이다.


바람의 영혼이 남긴 광맥을 따라 나무의 지혜를 읽는다. 이 광맥은 타협의 흔적이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 살아남은 기록이다. 인간 사회는 상처를 숨기라 말하지만 나무는 상처를 통과하라 가르친다. 그래서 나무는 늙어도 부끄럽지 않다.


수피는 경계다.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이다. 그러나 이 경계는 차단이 아니라 소통의 자리다. 인간 사회의 경계는 종종 배제와 차별의 도구가 된다. 누구는 안에 두고 누구는 밖에 둔다. 나무는 모든 바람을 같은 자리에서 맞는다. 차별하지 않는다. 다만 견딜 뿐이다.


나는 나무에게서 사회를 다시 배운다. 서열이 없는 질서. 경쟁이 아닌 공존. 성과가 아니라 지속. 인간 사회가 잃어버린 거의 모든 가치가 이 숲 안에 남아 있다. 언젠가 인간 사회도 수피를 갖게 될까.

지운 기록 대신 남긴 흔적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빠른 성공보다 오래 버틴 시간을 존중할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늘도 나무를 안는다.

나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나는 이미 답을 들었다. 인간이 자연보다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배워야 할 것은 늘 아래가 아니라 곁에 서 있는 것이라는 진실. 그것이 수피가 내게 남긴 가장 냉정하고도 다정한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