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에 가까이 닿을수록 윤곽을 짐작할 수 없다. 숲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산의 모양을 알 수 없듯 너무 안쪽으로 들어오면 사물은 형태를 잃는다. 빛은 방향을 잃고 말은 의미를 놓친다. 가장 뜨거운 자리에서는 설명이 먼저 타버린다. 나는 오랫동안 중심을 향해 걸어왔다. 핵심이라는 말과 본질이라는 단어가 삶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곳에 닿기만 하면 이 삶의 이유와 상처의 연원과 나를 버티게 한 힘의 정체가 한 번에 풀릴 것 같았다. 중심은 언제나 답이 있는 장소처럼 불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견디는 시간을 건너뛰고 곧장 그곳으로 가려 했다. 나 역시 그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을 품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했는지 왜 어떤 말은 아직도 나를 찌르는지 왜 떠난 사람보다 남은 시간이 더 아픈지. 질문은 나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고 나는 중심 가까이에서 자주 숨을 고르지 못했다. 중심은 늘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너무 가까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올려다보듯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는 방향 감각이 사라졌고 스스로를 설명하던 언어들이 무너졌다. 견디기 위해 붙잡았던 말들이 오히려 나를 더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기억이 서로를 밀쳐냈고 감정은 이름을 잃었으며 문장은 끝을 찾지 못했다. 말하려 하면 울컥했고 쓰려 하면 손이 멈췄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삶은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동시에 쏟아져 들어왔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켰고 상처와 후회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진실은 가장 안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중심은 불씨에 가깝고 윤곽은 숨에 가깝다는 것을. 숲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나무만 보일 뿐 산의 높낮이나 흐름은 알 수 없듯 너무 깊이 들어간 자리에서는 전체가 사라진다.
윤곽은 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인다. 너무 멀면 남의 일이 되고 너무 가까우면 몸이 타버린다. 윤곽이 보이는 거리는 견딜 수 있는 거리다. 삶은 그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 사람에게 가혹해진다. 상처를 떠올릴 때도 그렇다. 막 다친 순간에는 통증만 있고 모양은 없다. 그때는 말할 수 없다. 설명하려는 순간 더 아파진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아 이것은 이런 상처였구나 하고. 윤곽이 생긴다는 것은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을 바라볼 자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별도 그랬다. 떠난 순간에는 말이 아니라 소음만 남았다. 이유를 찾으려 할수록 마음은 더 흩어졌다. 이해하려 애쓸수록 설명은 거칠어졌고 감정은 날카로워졌다. 그러다 어느 날 윤곽만 남은 기억을 보게 된다. 함께 웃던 얼굴과 식탁 위에 남겨진 그릇과 말없이 건네던 온기. 중심은 사라졌는데 윤곽은 아직 살아 있었다. 관계의 본질을 알지 못해도 그 형태는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삶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삶을 이해하려 들기보다 삶의 윤곽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모든 것을 알지 않아도 형태만은 남길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완벽한 중심을 파고드는 일은 종종 글을 망친다. 너무 정확하려는 문장은 숨을 쉬지 못하고 너무 결론적인 문장은 독자를 밀어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문장을 닫지 않는다. 정답처럼 끝맺지 않고 여백을 남긴다.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고 여기부터는 침묵해야 한다는 경계만 남긴다. 그 경계가 글을 지탱한다.
윤곽을 남기는 글은 불친절해 보일 수도 있다. 설명하지 않고 다 말하지 않으며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읽는 사람이 자기 속도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나는 그런 글을 믿는다. 누군가의 중심을 건드리지 않고도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글. 타버리지 않고 함께 숨을 고를 수 있는 문장. 윤곽은 한계가 아니다. 윤곽은 지금의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다. 여기까지 왔다는 표시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기도 하다. 삶은 늘 중심을 향해 우리를 부르지만 우리는 윤곽에서 살아간다. 견딘다는 것은 중심에 닿지 않는 기술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윤곽을 잃지 않는 일이다. 오늘의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오늘의 나는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중심에 닿지 않아도 괜찮다. 윤곽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글은 그렇게 완성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