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음에 글이 있었다

by 이 경화

삶을 먼저 살고 난 뒤에야 글이 남는다는 사실은 내게 오랫동안 위안이 되었다. 나는 글을 위해 하루를 관리하지 않았고, 쓰기 위해 삶을 재단하지도 않았다.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한 채 문장 앞에 앉아 있으면 글은 언제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가 나를 어떻게 통과해 가는지를 더 오래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었고, 어떤 날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만 남았다. 그 모든 날들이 글이 되지는 않았지만, 글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하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무거웠고, 나는 그 무게를 먼저 견디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들은 언제나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름을 얻었고, 지나간 일들이 한참 뒤에야 의미를 갖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즉각적인 기록보다 돌아오는 시간을 신뢰하게 되었다. 글은 반응이 아니라 되돌아옴에 가까웠고, 삶은 언제나 말보다 앞서 있었다. 나는 말들이 나보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글을 대하는 태도이자, 삶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삶은 늘 한 박자 빨랐고, 글은 그 뒤를 천천히 걸어왔다.



어떤 기억들은 오래 묵은 뒤에야 문장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견디는 일에 집중하느라 적어낼 수 없었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 조용히 글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이 나를 구원했다기보다, 내가 이미 살아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내 삶의 구원자도, 선지자도 아니었다. 앞서 이끌지도,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같은 방향으로 걷다 보니 끝까지 곁에 남아 있던 행인에 가까웠다. 말없이 함께 걸었고, 먼저 떠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설명은 언제나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삶의 결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대신 나는 말이 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 머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 날에는 억지로 다음 줄을 적지 않았고, 쓰지 않는 시간 역시 글의 일부라고 여겼다. 침묵은 실패가 아니었고, 멈춤 또한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앞서지 않으려 애썼다.



글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많았다. 세상에는 더 급한 일들이 있었고, 글은 아무런 해결책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글은 다시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있었던 기억으로. 나는 글에 의지하지 않고 삶에 의지해 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남은 자리마다 글이 있었다. 글은 늘 남음으로 도착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하다. 나에게 글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몸에 맞는 옷과 같았다. 특별히 멋을 낸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도 아니었다. 다만 하루를 건너기 위해 자연스럽게 걸치는 옷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옷을 입고 다시 하루를 건넜고, 또 다른 하루로 들어갔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적어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사라지지 않기 위해 글을 적어 내려갔다. 살기 위해 썼고, 남아 있기 위해 썼다. 쓰는 동안 다시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또 썼다.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웠고, 다짐이 아니라 반복에 가까웠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먼저 살아간다. 하루를 버티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잠들고, 다시 깨어난다. 그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글이 남는다. 나는 그 순서를 신뢰한다. 글이 삶을 대신하지 않도록, 삶이 언제나 앞서도록.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말들이 나보다 늦게 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건너가고, 그 남음에 글이 있다면 그저 받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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