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대하여

“인간은 빛으로부터 났으며 빛으로 돌아간다.”

by 이 경화


“인간은 빛으로부터 났으며 빛으로 돌아간다.”



나를 받아내신 외조부의 죽음을 나는 아주 먼저 보았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새벽녘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정원에 나가셨다. 아직 밤의 기척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시간이었다.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흙은 밤새 식어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였고 그날이 특별한 날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나를 데리고 나와 정원을 한 바퀴 도셨다.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나는 그 고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몸이 바닥에 닿는 소리보다 먼저 어떤 회전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회오리처럼 나선을 그리며 하늘로 하늘로 뱅글뱅글 돌며 올라가셨다. 점점 멀어지며 아주 큰 빛이 되셨다. 너무 먼 곳에서 아주 크게 빛을 내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분 후 할아버지 방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 엄마의 비명과 이모의 절규가 이어졌다. 현실의 소리는 그때서야 나를 다시 붙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랫동안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은 일종의 할아버지와 나만이 공유하는 비밀의 차원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말로 꺼내는 순간 훼손될 것 같았고 설명하려는 순간 거짓이 될 것 같았다. 어떤 경험은 증명되는 순간 오히려 진실에서 멀어진다. 나는 아이였지만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후의 경험으로 사람은 빛에서 나서 빛으로 돌아간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인간은 빛의 찌꺼기가 모여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셨다. 원래 빛이었던 본질이 빛으로 살다가 다시 빛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그 빛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빛은 혼자서도 존재하지만 다른 빛을 더할 때 더 힘이 세어진다고 하셨다. 그러니 서로를 빛나게 해야 맞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기억 속 어딘가에 저장해 두고 살아왔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여러 종류의 어두움을 경험했다. 사람의 마음이 닫히는 어두움 관계가 끊어지는 어두움 삶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체의 어두움.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깊었던 어두움은 몸의 시간에 들어갔을 때였다. 암 수술을 받은 뒤 나는 이전의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몸은 더 이상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하루의 리듬은 병원의 시간표에 맞춰 조각나 있었다. 병실의 불은 늘 일정했고 창밖의 하늘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곳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였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는 무너졌고 어제의 나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았다. 몸 안 어딘가에서 빛이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수가 줄었고 생각은 느려졌으며 삶은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졌다. 오늘을 견디는 일이 내일을 생각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살아야 한다는 명령만이 남아 있었고 살아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동위원소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사흘간 격리된 시간은 더욱 낯설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사람의 체온이 사라진 공간에서 나는 혼자 누워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조차 멀게 느껴졌다. 몸은 방사선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힘을 견디고 있었고 나는 내가 아닌 무엇이 된 것처럼 가만히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살아 있어야 했다. 인간에게서 역할과 설명과 관계가 모두 제거되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살아 있음 그 자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격리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며 나는 모든 짐을 버렸다. 몸에 닿았던 것들 머물렀던 것들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물건들을 뒤로 남겼다.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병원 문을 나서자 햇볕에 반짝이던 나뭇잎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평범한 풍경이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게 다가왔다. 이전의 나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던 햇볕 한 줌 앞에서 경외심을 느꼈다. 그것은 종교적 감정이라기보다 살아 있음에 대한 본능적인 인사에 가까웠다.



신호등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제야 몸으로 돌아왔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햇볕이 피부에 닿는다는 사실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새로웠다. 어쩌면 그 한 줄기의 빛 덕분에 다시 두 주먹을 쥐고 살아갈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이후 빛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에 잠시 스며드는 작은 허락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빛을 성공이나 희망이나 구원의 은유로 말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빛은 언제나 작고 조용했다. 대개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나타났고 기대하지 않았을 때 도착했다. 빛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순간에 아주 잠깐 허락처럼 들어온다.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이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든다.



광활한 어두움에 놓인 것처럼 느껴지는 인생의 암흑기가 있다. 모든 빛을 앗아간 컴컴한 적요와 마주하게 되면 공포도 사치가 되고 절망도 어리광에 불과해진다. 아무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계획도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의 존재를 가장 뜨겁게 경험한다. 빛은 언제나 어두움의 반대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서만 인식된다.



그래서 나는 어두움 앞에서는 절망과 탄식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생각한다. 그 어두운 시간 정지된 시간들이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정직해진다. 빛은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고 어두움은 우리를 안쪽으로 데려간다.



인생은 명과 암으로 단순히 점철되지 않는다. 밝음 뒤에 어두움이 오고 어두움 뒤에 다시 밝음이 오며 우리는 돌고 돌며 살아간다. 이 반복은 벌이 아니라 구조에 가깝다. 우리는 빛을 경험하기 위해 어두움을 지나고 어두움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빛을 찾는다. 그러다 언젠가는 왔던 곳으로 다시 빛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제 너무 쥐어짜듯 살지 않기로 했다. 빛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어두움을 밀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빛이 스며들 수 있는 틈을 남겨두고 살기로 했다. 인간은 빛으로부터 났으며 빛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의 삶은 빛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긴 연습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그 남음에 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