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말한다. 세상은 이미 정해진 질서 속에서 굴러가고 인간은 그 질서를 따르며 살아가야 한다고. 제자리에 놓인 톱니처럼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 큰 문제 없이 돌아간다고. 그 말은 그럴듯하고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그 말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질서란 과연 무엇인가. 누가 만들었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 존재인가. 나는 질서의 일부인가 아니면 잠시 스쳐 가는 변수인가. 나라는 존재는 타인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으로 던져진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어느 지역에 속하며 어떤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 이름은 곧 호명되고 구분되고 기대를 품은 채 불린다. 착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들이 자라나는 시간과 함께 덧붙여진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나는 언제부터 ‘나’였을까. 이름이 불린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내 안에서 처음으로 생각이 일어났던 순간부터였을까. 어쩌면 나는 늘 타인의 시선과 나 자신의 자각 사이 어딘가에 떠 있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갈지 무엇을 포기할지. 그중에는 가볍게 흘려보낸 선택도 있고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선택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선택들이 정말 내 목소리였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내린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한 안전한 답안이었는지. 나는 과연 나로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잘 살아 보이기 위해 애쓴 누군가의 역할을 연기해 온 것일까.
나로 살아간다는 말은 자주 오해된다. 사회의 기준을 거부하고 규범을 무너뜨리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서를 거부한다고 해서 곧장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기준을 세운다고 해서 곧바로 나로 사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회라는 틀 안에 있으면서도 그 틀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잠시 고개를 돌려 다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나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믿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끝내 혼자 돌아와야 하는 마음의 방이 있다. 그 방 안에서는 누구의 목소리도 대신 울리지 않는다. 고독은 때로 나를 두렵게 하고 때로는 나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고독 속에서 가장 나다운 얼굴을 만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흐릿해지던 내가 홀로 있을 때 또렷해진다. 고독은 나를 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어둠일지도 모른다.
사색의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무엇이 나를 이끌어왔는지 무엇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 누구의 말에 오래 흔들렸고 누구의 침묵에 오래 머물렀는지. 그렇게 들여다보면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타인의 기대였음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알아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어제 옳았던 것이 오늘은 의심받는다. 나 또한 변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를 것이다. 그 변화가 항상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후퇴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상실일지도 모른다. 변화 속에서도 나를 완전히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나로 살아간다는 일의 핵심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중심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흔들리고 확신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낯설어진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흔들림을 실패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들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는 표시다. 완성된 인간이 되기보다는 계속해서 생성 중인 인간으로 남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더 정직한 태도처럼 느껴진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평생에 걸쳐 연습하는 일일 것이다. 한 번의 선언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과 태도 속에서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다. 때로는 타인의 기대에 기대고 때로는 그 기대를 밀어내며 나는 오늘도 줄다리기를 한다. 완전한 답은 없고 선명한 결론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더 이상 남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기를 바란다. 길을 잃어도 괜찮고 멈춰 서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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