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삼춘 트기

by 이 경화


제주에서 ‘삼춘’이라는 말은 단지 호칭이 아니다. 육지에서 삼촌은 부모의 형제나 친척을 뜻하지만, 제주에서 삼춘은 혈연을 넘어 마을 공동체 안에서 친숙한 어른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제주에서 삼춘이 된다는 것은 관계가 무르익은 뒤에야 얻는 자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과정을 ‘삼춘트기’라 부른다.


처음 제주에 온 외지인들은 종종 착각한다. 어른이면 누구나 삼춘이라 불러도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삼춘이라 부르는 일이 오히려 어색함을 넘어 실례가 되기도 한다. 삼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놓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주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몇 번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계절이 한 번쯤 지나가야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린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치 허락처럼 “이제 삼춘이라 불러도 되겠네”라는 말이 건너온다. 그때 비로소 이름이 제자리를 찾는다.


나도 그 사실을 몰랐던 적이 있다. 제주에 막 왔을 때, 동네 수퍼에서 물건을 사며 무심코 “삼춘,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내가 네 삼춘이가?”였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가게 안의 공기가 잠시 멎은 듯했고, 나는 어쩔 줄 몰라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어르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삼춘이라 부르려면 먼저 좀 알고 지내야지.”


그날 이후 나는 인사를 먼저 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들러 안부를 물었다. 감귤 한 알을 건네받고,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이 오가는 날이 쌓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어르신이 먼저 말했다. “이제 삼춘이라 불러도 되겠네.” 그 말은 단순한 허락이 아니라 관계의 완성이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이 섬의 시간 속으로 한 발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삼춘트기는 제주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급히 친해지려 들지 않고, 그렇다고 끝내 밀어내지도 않는다. 일정한 거리 속에서 신뢰를 쌓아가며 틈을 조금씩 좁힌다. 그 기다림 속에서 관계는 스스로 모양을 갖춘다.


그래서 삼춘이라는 말에는 온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맺어진 신뢰의 표시다. 함부로 얻을 수 없기에 더 귀하다.


여행객들이 제주에서 아무 어른에게나 삼춘이라 부르는 일을 삼가기를 바란다. 그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삼춘이라는 이름은 관계의 시간 위에 놓인다.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삼춘이라 부를 날이 온다.


삼춘이라 부르는 것은 제주 사람이 되어가는 작은 신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얻기까지의 과정, 곧 삼춘트기다. 기다림과 존중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의 아름다움.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제주가 우리에게 조용히 가르쳐 주는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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