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앞에 서다

by 이 경화


에곤 실레의 〈포옹〉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온전히 안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서로를 감싸 안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깊숙이 끌어안았고 여자는 그 품에 기댄 채 감은 눈으로 안식을 찾는다. 그들의 몸은 뒤엉켜 하나가 되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롭다. 손끝은 애절하게 맞닿아 있지만 마치 이 순간이 끝나버릴 것을 예감하는 듯 금방이라도 놓쳐버릴 듯하다.


에곤 실레의 붓은 살을 그리면서도 살을 넘어선 것을 건드린다. 뼈 가까이 붙은 선들은 날카롭고, 색은 붉게 타오르다가도 푸르게 식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견디려 하지만 그 사랑마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안는다는 것. 그것은 결국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결핍의 자각에서 비롯된 행위인지도 모른다.


붉고 푸른 옷감이 얽힌 그들의 형체는 한순간 불타오르다가도 금세 사그라질 것만 같다.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있지만 얼굴과 몸의 경계는 여전히 또렷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는 순간 우리는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절박해진다.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이 순간이 끝나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나 혼자가 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포옹은 서로를 완전히 채워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안는다. 더 깊이. 더 절박하게. 안을수록 비워지고 비워질수록 더욱 채우고 싶어진다. 실레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사람의 몸을 그리면서도 그 속의 공허를 포착했다. 얽혀 있는 이들은 가까워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깊은 고독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포옹을 해왔을까. 손을 내밀고 어깨를 두드리고 한없이 서로를 감싸 안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결국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포옹은 위안이지만 동시에 부질없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안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사유할 때도 혼자이며, 결국 마지막 문턱을 넘을 때도 혼자일 존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나는 언제 안기고 싶을까.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어둠 속에 나만 남겨진 듯한 고요한 순간에. 지친 하루 끝에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세상 속을 유령처럼 떠도는 기분이 들 때. 그럴 때면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저 따뜻한 품 안에 스며들고 싶어진다.


그러나 가장 안기고 싶은 순간은 슬플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기쁠 때. 가슴이 벅차서 감당할 수 없을 때. 혼자서는 다 누릴 수 없는 행복이 넘칠 때. 그때야말로 포옹이 간절해진다. 그 순간을 함께 붙잡고 싶어서. 나의 기쁨을 온전히 나눠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이 행복이 사라지지 않도록 두 팔로 감싸고 싶어서. 그렇게 우리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외로움,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서로를 안는다.


에곤 실레의 〈포옹〉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끝내 서로의 고독을 지워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가가 손을 얹는 것, 그 불완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형식이 아닐까.


완전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두 팔을 벌린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 번의 포옹을 위해



image.png


매거진의 이전글정식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